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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선한 지향, 헬퍼 신드롬(조력자 증후군)

66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11

[레지오와 마음읽기] 선한 지향, 헬퍼 신드롬(조력자 증후군)

 

 

다음은 어떤 단어의 설명일까?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에 대한 총칭, 증세로는 일관성이 있지만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아 특정 병명으로 부르기에는 곤란한 것을 말한다.’ 바로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신드롬’(syndrome)이다. 주로 과민성 대상 증후군이나 피터팬 증후군, 슈퍼우먼 증후군처럼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활동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공통된 증상이나 현상이 전염병처럼 급속히 퍼져 나가는 것’에도 사용한다. 예를 들면 김연아 신드롬, 해리포터 신드롬 등이 그것이다. 이런 신드롬들은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 치료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남을 돕는 행위는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헬퍼(helper)에 붙은 ‘헬퍼 신드롬’은 놀랍게도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인 볼프강 슈미트바우어가 ‘무력한 조력자’라는 책에서 밝힌 것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돕는 이유가 어떤 경우는 자신의 문제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남을 돕는 행위가 상대를 궁지에서 빼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며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헬퍼 신드롬의 특성은 남들에게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라고 권하거나 실제로 도움을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도움을 받는 것을 거절한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거나 자신의 어려움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며, 남을 돕는 행위만을 한다.

 

 

자신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남을 돕는 ‘헬퍼 신드롬’

 

이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신드롬에 시달리게 되면 자신은 돌볼 겨를 없이 남에 대한 과도한 희생으로 결국 기진맥진한 상태인 번아웃(burnout)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중독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다. 대체로 이 신드롬은 성직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여러 가지로 취약한 상태의 사람들을 돕는 직업군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실제 자신보다 강한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약점이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고, 다정다감하고 유능하기도 한 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자신에 대한 돌봄 부족을 가져오고 결국 인정과 사랑에 굶주린 아이를 자신 안에 감추고 있는 격이 될 수 있다.

 

교사였던 J자매는 몸이 아파 직장을 그만 두었다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서 알게 된 자매의 권유로 레지오 단원이 되었는데 활동을 위해 제대회에 가입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교사 경력을 알고 노인대학에서도 봉사를 요청하자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친정어머니 같은 어르신들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성소후원회의 회비 받는 일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부탁하자 거절하지 못하고 매주 미사 전에 시간을 내게 되었다.

 

자연히 집안일은 뒷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모처럼 건강을 찾아 활동하는 듯 하여 그대로 두고 보아왔다. 그러다 J자매가 힘들어서인지 기분 변화가 심해지면서 가정불화가 잦아지고 몸도 다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남편은 성당 봉사에 대하여 극도의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고 그녀는 의사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이 상담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신을 끊임없는 봉사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강조하면서 그녀가 착한 일을 할 때만 인정해 주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동으로 사랑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신자인 저는 자신을 돌보는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저를 끊임없이 남을 위하여 행동하게 했는데 그것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결코 착한 게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와 제 가족도 돌보면서 봉사하려고요. 그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비행기에서 응급 상황시 산소마스크는 어린이와 어른 중 누가 먼저 착용해야할까? 어린이를 먼저 보호해야할 듯 하지만 어른이 먼저이다. 이는 어른이 정신을 잃었을 경우 어린아이가 위급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상대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돌봄도 필요하다.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욕구도 제대로 살펴서 도와줄 수 없어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영어로 ‘정지’ ‘중단’이라는 뜻의 ‘HALT’가 있다. 여기에 H는 Hungry(배고픔), A는 Angry(화), L은 Lonely(외로움), T는 Tired(피곤함)란 뜻이다. 이 단어는 중독환자들의 회복 교육에서 위험 상황을 알리는 첫 글자로, 이런 상황이 오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를 돌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중독자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돌봄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않는가!

 

 

그리스도 신자란 이웃을 돌보도록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사람

 

봉사를 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가? 상대가 이제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데도 계속 도움을 주고 싶은가? 혹은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에게 주목하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으면 섭섭함을 넘어 화가 나는가? 뿐만 아니라 봉사를 하지만 즐겁지 않고 점점 힘들어지고 지쳐간다는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헬퍼 신드롬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 행동일 뿐이며, 자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이때는 내가 왜 봉사를 하고자 하는지 그 동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나의 봉사로 인해 나와 내 가족, 동료들이 피해를 보는 현상이 일어나면 더욱 그러해야한다. 그러니 우리의 봉사는 쁠뤼(Pere Raoul Plus) 신부의 “그리스도 신자란 자신의 이웃을 돌보도록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사람들이다.”(교본 276쪽)라는 말처럼, 그리스도를 닮고자 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봉사가 의무인 레지오 단원들은 성녀 소화 데레사의 다음 기도를 기억해야한다. “저를 통해 영혼들에게 알맞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면 제 손을 먼저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당신 품안에 숨어서 얼굴을 묻은 채로, 제게 영혼의 양식을 구하러 오는 이들에게 당신의 보화를 나누어 주겠습니다.”(교본 325쪽). 이를 위해 우리는 “성모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고, 성모님과 더불어 모든 시련을 견디어 내며, 성모님과 더불어 일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고, 성모님과 더불어 쉬어라.”(토마스 아 캠피스, 교본 49쪽)는 말처럼 하면 된다. 이는 ‘각각의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가 나날이 자라시게 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처음 성모님 안에서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을 때처럼, 성모님의 동의와 모성적 돌보심이 필요’(교본 418쪽)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도와 주셔야만 우리의 선한 지향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교본 36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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