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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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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예의를 갖춘 바른 행동(고슴도치 딜레마)

63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5-11

[레지오와 마음읽기] 예의를 갖춘 바른 행동(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추위를 이기기 위해 체온을 유지하고자 모여들었다. 그리고 몸을 붙이려고 다가가지만 서로의 가시에 찔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추위로 다시 가까이 가려고 해도 가시 때문에 또 떨어져야 했다. 결국 고슴도치들은 일정 간격 이상으로는 가까워지지 못하였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1851년에 발표한 ‘소논문집과 보충논문집’에는 위와 같은 고슴도치 우화가 나온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의 이런 현상을 사람에게 빗대어, 타인에게 따뜻함을 원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상처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후대 사람들은 쇼펜하우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말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세계관이 비관적인 것으로 유명하고, 그의 삶 또한 여성을 비하하며 결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의 우화에서 보듯 ‘관계에서 친밀함을 원하는 마음과 상대와의 적당한 거리를 원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된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이 고슴도치 딜레마를 심리학 영역에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딜레마의 대표 인물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 있다. 그는 대통령 재직 10년 동안 비서실 등 개인 참모들의 임기를 2년이 넘지 않게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드골의 직원들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되었고 드골 역시 새로운 의견들로 진취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골과 직원들 사이에 친밀한 정서적 유대는 없었다고 하니, 적당한 친밀함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셈이다.

 

요즘은 고슴도치 딜레마를 타인에게 다가가려 해도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표현하는데 사용한다. 그러니 고슴도치 딜레마는 가정보다는 일이 중심인 회사나 정(情)이 중요했던 옛날보다는 현대에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그것은 나홀로족이나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사람 관계의 거리도 좁혀지는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은 존중되어야

 

Y자매는 학창 시절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유달리 컸다. 그래서 매일 미사 참례나 강의식 성경공부 등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봉사에 대한 열망으로 레지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녀는 주회가 끝나자마자 핑계를 대고 먼저 가는 등 의도적으로 단원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피하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잦은 만남도 부담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Pr. 단장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 놓으면서 단장은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하게 되었다.

 

이후 Y자매는 단장을 믿고 따르게 되었으며 그것이 점차적으로 단원들 간의 믿음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완전하지 않아서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뒷담화도 상대를 가까이 해서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전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의를 잃지 않으면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게 되고 그래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고 봅니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라도 경계심이 사라지면 자연히 가시도 풀어지게 되어 얼마든지 가까이 할 수 있다. 고슴도치도 자신을 보호하는 주인에게는 가시를 세우지 않는다. 사람 관계의 거리도 좁혀지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은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겪게 된 각기 다른 경험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은 존중되어야 한다.

 

가까워지려고 해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동료단원들이나 활동대상자들 중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가시로 여겨지는 분노나 비난, 이기심, 시기나 오만 등은 누구에게나 있고,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려움은 믿음으로 극복될 수 있으니, 나보다 두려움이 더 큰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어쩌면 그도 두려움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본에도 “이러한 사람들(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도우려면 –중략- 오직 끝까지 참고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그를 대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421쪽)고 되어있다.

 

 

사람 간에 적정한 거리를 아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위한 지혜

 

다음은 한 때 유명했던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대사의 한 장면이다.

 

“신지는 친구 사귀기 힘든 성격 같아 보이지. ‘고슴도치 딜레마’를 아니? 고슴도치는 상대에게 자신의 따스함을 전달하려 해도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가시로 상대에게 상처 입히고 말지. 사람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어. 지금의 신지는 남에게 미움 받을 아픔을 두려워한 나머지, 겁쟁이가 되어 버린 구석이 있으니까 말이야. 뭐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서로 상처받지 않는 거리를 찾아내는 거라는 것을…”

 

이 대사처럼 사람 간에 적정한 거리를 아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위한 지혜이다. 애정 어린 관심도 너무 가까우면 간섭으로 느껴지고 자신도 모르게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독립을 연습하는 시기인 사춘기 자녀와 온갖 것을 지시하는 부모와의 관계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그들에게 갈등은 필연적이고, 그 갈등의 정도는 심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떤 관계이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무와 나무, 건물과 건물도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와 함께 빛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교본에 “두 분(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중략- 마음을 터놓고 은밀한 생각까지도 서로 나누는 사이로 발전해 갔다.”(교본 316쪽)고 하니,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관계의 수준은 남달라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과 마리아처럼, 가까이 하여 서로를 내보여도 절대로 아프지 않는 수준이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St. Francis de Sales)은 –중략-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가 소위 ‘작은 덕행’이라 부르는 덕목을 권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정 어린 마음씨와 예의를 갖춘 바른 행동, 인내와 배려, 그리고 이해,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싸 주는 일이었다.(교본 315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5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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