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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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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신앙교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길에서의 은총

204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9-07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길에서의 은총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도움

 

우리는 수많은 갈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수많은 갈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은총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고 ‘선물처럼 거저 주시는 도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응답하는 삶을 잘 살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란 한 마디로 구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내용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의 양자가 되는 것이고, 하느님의 신성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부르시되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구원되도록 우리를 계속해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직접 구원으로 이끌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가톨릭교회교리서 1997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구원이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이며,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은총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또한 구원이란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을 의미합니다. 즉 죄인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 의로운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은 이를 ‘의화’(義化)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이러한 의화로 이끌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가톨릭교회교리서 1996항) 될 수 있음을 교회는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의로운 상태로 되는 것은 곧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우리가 구원된다는 말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말이 “의화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가톨릭교회교리서 1994항) 이라는 표현입니다.

 

 

은총을 입은 나

 

나는 얼마나 많은 은총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의 경우에도 얼마나 많은 은총을 입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어릴 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 후에도 삶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과연 제대로 살아왔을까 싶습니다.

 

흔히들 ‘어떤 은총을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자주 혹은 많이 바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은총을 주십사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이전에, 내 자신이 얼마나 은총을 많이 입은 존재인지 숙고하고 깨닫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고, 그래서 은총을 덜 입은 사람이라 생각하신다면 바오로 사도를 보십시오.

 

 

육신의 병으로 큰 고통을 겪은 바오로 사도

 

바오로 사도는 육신의 병(몸의 가시)을 안고 고생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그 병과 그로인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십사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였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2코린 12,8) 세 번이나 청했다는 정말로 딱 세 번만 간청하고 그만뒀다는 말이 아니라 간절한 청원의 기도를 올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 번 기도하셨다고 했는데,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처럼 간절하게 청하였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첫째 기도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라는 것이었고, 둘째 기도도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 26,42)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자고 있는]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습니다.”(마태 26,44) 그런데 예수님의 다음 행동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그러고 나서 즉시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마태 26,46)

 

 

은총을 청하는 바오로 사도의 자세: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받아들임

 

예수님께서 아버지 간절히 기도하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떼를 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간청하던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순종은 자신이 이미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 아닐까요?

 

사도는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약점마저 본인이 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

 

 

바오로 사도의 기도: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감사

 

바오로 사도는 처음 자신의 청원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망하고 좌절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실망과 좌절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적인 통찰로써 이겨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고, 그 결과 주님의 능력은 나약함 가운데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깨달음으로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는 고통을 멀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사명을 맡기셨고, 또한 그 사명을 수행할 힘까지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약하기에, 그 약한 자신 안에서 주님께서 더 잘 활동하시게 된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그 뒤의 일과 결과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오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우리에게도 호소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바오로 사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보잘 것 없는 우리 안에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하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9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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