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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제키엘

468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5-2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제키엘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기원후 2세기) 이후로, 족보로 시작하는 마태오 복음사가를 사람에, 광야의 외침으로 시작하는 마르코를 사자에,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사제 즈카르야의 이야기에서 루카 복음사가를 황소에, 로고스찬가로 서두를 여는 요한복음은 높은 곳을 나는 독수리에 비유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에 대한 언급은 에제키엘서의 시작에 등장하는 ‘주님의 발현에 대한 환시’(1,4-28; 10,1-22)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에제 1,1(유배 5년)과 33,21(유배 12년)의 날짜들은 에제키엘(주님께서 힘이 되어 주신다) 예언자가 기원전 593년부터 587년 사이에, 또한 29,17(유배 27년)은 최소한 그가 571년까지 활동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유다왕국이 멸망하던 시기에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디 사제였습니다(에제 1,3). 그런데 바빌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짓밟고 임금과 유력인사들을 포로로 끌고 가던 597년의 1차 유배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같이 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민족의 땅에서 사제라는 자신의 본분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이를 주님은 부르셔서 ‘당신의 영을 넣어 주시고’(2,2)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2,3),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먹게 하십니다(2,8-3,3). 그렇게 그를 당신의 사람으로 일으켜 세워(2,1-2) ‘이스라엘을 위한 파수꾼’(3,16; 33,7)으로 파견하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표현 중의 하나가 ‘본다’(1,4.15.27; 2,9; 8,2.7.10; 10,1.9; 40,4; 41,8; 44,4)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말 성경에서 ‘환시’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되는 장면들에서 등장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전하는, 곧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1장의 ‘주님의 현현(顯現 Theophania)’, 2장의 ‘두루마리’, 10장의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다.’, 37장의 ‘이스라엘의 부활 환시’, 40장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시’와 ‘주님의 영광의 귀환에 대한 환시’, 47장의 유명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에 대한 환시’ 등이 있습니다. 그러한 ‘환시’ 속에서 그는 자신이 있던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스라엘 땅의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도 보게 됩니다.

 

한편, 그도 다른 예언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47구절)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주님의 손이 나에게 (무겁게) 내리셨다.’(1,3; 2,9; 3,14.22; 8,1; 33,22; 37,1; 40,1)는 독특한 표현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제키엘의 독특함은 단지 언어적 표현만이 아닙니다. 그는 많은 상징적인 행동을 합니다. 일주일간 넋을 잃기도 하고(3,15), 벙어리가 되기도 합니다(3,22-27).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4,1-8),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불에 태우기도 합니다(5,1-4). 공포에 떨며 음식을 먹는가 하면(12,17-20), ‘눈의 즐거움’(24,16)이라 불리던 자신의 아내가 갑자기 죽었는데 상을 치르는 이로 살지도 않습니다(24,15-27). 그는 자신의 행동, 곧 삶을 통해서도 주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참담한 사건(기원전 587년)이 있기 전에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의 ‘질투’(5,13; 8,3.5; 16,38.42; 23,25; 35,11; 36,5.6; 18,19)를 불러일으키는 ‘혐오스런 것’(5,11; 7,20; 8,10; 11,18.21; 20,7.8.30.43; 36,3; 37,23)에 빠진 행위, 곧 우상숭배(6장, 8장, 11장, 13-17장, 22장, 23장)가 임금과 예언자들, 수령들과 백성들 사이까지, 그것이 단지 일상의 자리만이 아니라 성전에서까지(8장) 벌어지는 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오자(33,21) 그는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는 이스라엘이라는 양 떼를 이제 악한 목자들(34,2-9)에게 맡기지 않고 주님께서 직접 돌보겠다는 선언입니다(34,10-16). 그리고 당신께서 그들을 위해 ‘유일한 목자’(34,23)를 세워 양떼를 돌보고 먹이는 일을 맡기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선언, ‘착한 목자’(요한 10,1-18)와 연결됩니다. 에제키엘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이 전하는 또 다른 희망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마음, 새로운 계약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36,24.26.27ㄱ.28; 참조 11,17-21)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앞서 말한 환시들, 곧 죽은 뼈들이 살아나는 환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통일, 마곡의 임금 곡과의 전투와 승리, 마침내 새로운 성전과 생명의 물에 대한 환시를 통해 예언합니다.

 

에제키엘이 남긴 말씀은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남겼는데,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 묵시록을 비롯한 ‘묵시문학(apocalypsis)’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에제 8,2와 묵시 1,13; 에제 1,10; 10,14와 묵시 4,7을 비교해보십시오).

 

에제키엘은 앞선 예언자들의 전통, 특히 동시대에 활동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색다른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유배자들 가운데에서(1,1)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이민족의 노예가 된 이들,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이들, 그들 가운데에 그가 예언자로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은 상황, 주님의 징벌을 받는 중이라 생각하는 이들 그들 가운데에서, 예언자와 유배자들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을 드러냈습니다. 곧 그들 가운데에 주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주님께서 버려진 것 같은 이들과도 함께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2019년 5월 19일 부활 제5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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