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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니사의 고레고리오 - 생명의 길

58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7-21

[교부들의 신앙 – 니사의 고레고리오] 생명의 길

 

 

코로나19 감염증이라는 무서운 역병의 시간을 보내면서 참 많은 것이 변해 갑니다.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고 수많은 사람이, 팬데믹(전염병 세계적 유행)에서 벗어난다 해도 세상이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희망을 비추는 일

 

이 새로운 길 위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공동번역 성서」, 로마 5,3-5). 왜냐하면 “종교는 … 사람들의 목마름, 사람들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워 주기 위해 생겨났다.”는 어느 노교수의 말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질병의 고통과 경제의 어려움 속에 내일을 걱정하며 고민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이라는 생명의 길,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5년)의 작품, 「너희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사랑해야 할 가난한 이들」 제2권(In illud: Quatenus uni ex his fecistis mihi fecistis)을 통해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해 보고 싶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대 바실리오(Basilius Magnus, 329-379년)의 동생입니다. 형을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그레고리오는 형의 사회적 가르침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이들 형제와 더불어 ‘카파도키아 삼총사’로 알려진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us, 329-390년)와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사회적 연대 의식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해야 할 가난한 이들」 제2권은,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도 그 맥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00여 년 전 그레고리오는 다음의 복음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하늘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떠올렸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36,40).

 

 

니사의 그레고리오가 전한 강론

 

‘이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길을 바라보며 그 길을 향해 헌신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온정이 담긴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은 특히 지금 이 순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계를 위해 몸부림치는 가난한 이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이웃은 돌보면서 우리 가운데 복음이 실현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보여 주신 일치와 단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저버린 사람들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연적 본성을 따라야 합니다. 강도를 만나서 초주검이 된 불행한 이를 최소한의 연민도 없이 길가에 버려두고 온 사제와 레위 사람을 본받을 수는 없습니다(루카 10,30-36 참조). 어려움을 당한 이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런 사람들의 본을 따른다면 우리도 결코 죄로부터 결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말이 최소한 이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말로써 그들의 상처를 덮어 주고 사랑의 노래로써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은 과연 옳습니까?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과 사랑의 실천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림과 현실이 다르듯, 말과 행동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주님의 계명을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다 그들을 격리시켜 놓고 먹을 것을 주었다고 그들에게 해야 할 바를 다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자비도 연민도 없는 그저 보여 주기에 불과합니다. 그럴듯하게 선으로 포장은 했으나 결국은 그들을 우리의 삶 밖으로 추방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시작도 끝도 모든 이에게 한가지다.”(지혜 7,6)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모두가 예외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마련이고 이 법칙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로마 11,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새겨, 겸손하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교만으로 말미암은 첫 번째 희생자가 될지도 모릅니다(「사랑해야 할 가난한 이들」 제2권 참조).

 

 

함께하는 삶으로 드러내는 복음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이웃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모습과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빠진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의 나눔이라는 애덕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생명의 길이자, 하느님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오늘날, 니사의 그레고리오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 원고에 소개한 「사랑해야 할 가난한 이들」 제2권의 현대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Susan R. Holman, The Hungry Are Dying: Beggars and Bishops in Roman Cappadocia, Oxford, 2001, 199-206면(영어); Piero Gribaudi, Servire I poveri gioiosamente, Torino, 1971, 125-131면(이탈리아어).

 

* 김현 안셀모 – 부산교구 신부로 언양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사목 단상을 담은 수필집 「나그네 생각」을 썼으며, 역서로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5, 브라가의 마르티누스」가 있다.

 

[경향잡지, 2020년 7월호, 김현 안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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