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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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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행복

98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12

[행복을 찾아서] 행복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 밑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하건만.

아, 사람들 따라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 

산 너머 언덕 너머 더 멀리에는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하건만.

 

 

잡히지 않는 행복 

 

독일 시인 칼 붓세의 ‘저 산 너머’(Uber den Bergen)라는 시다.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진실, 행복은 도무지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진리를 노래하고 있다. 자명하지만 동시에 허탈한 진리다. 행복은 모든 인간의 소망이건만, 좀처럼 얻을 수 없다니 말이다.

 

사실 인간이 누리려는 권리 가운데 상당수는 ‘정말로’ 실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병에서 자유로운 권리, 곧 건강권이 그렇다. 어느 정도는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태어난 아기의 절반이 곧 죽었다. 운 좋게 유소년기를 넘겨도 기아와 전염병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손주를 보는 일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일이었고, ‘노인’으로 죽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일부 사회에 한정된 일이지만, 많은 사람이 천수를 누린다.

 

자유권도 마찬가지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지만, 지난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성이 투표권이나 재산권을 얻은 것은 불과 반세기 남짓에 불과하다. 개인의 자유는 타고난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거주와 집회, 결사, 종교 등 자유권을 인류가 얻어낸 것은 아주 근래의 일이다.

 

과거보다 분명 자유롭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전보다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

 

 

행복 추구권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다양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존엄권, 행복 추구권, 평등권, 자유권, 생존권 등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른 권리는 그 자체로 권리인데, 행복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이것은 추구권이다.

 

행복은 권리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권리, 곧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 밑’으로 떠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으나, 행복 자체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행복 추구권은 1987년 제9차 개헌에서 새로 삽입되었다. 아마도 미국 독립 선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 선언서를 기초하면서 자유권과 생명권, 그리고 행복 추구권을 명문화했다. 행복은 국가나 사회가 대신 줄 수도 없고, 다만 행복을 향해 나아갈 기회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과정으로서 요리, 결과로서 요리

 

현대인이 생각하는 행복은 사실 행복의 결과에 불과하다. 본디 행복은 완전한 삶을 위한 미덕을 잘 지키는 도중에 얻는 선 자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감정적인 편안함과 쾌락을 지칭하는 말로 변했다. 정신의 결과가 행동인데, 이제 행동 없는 정신적 활동만으로도 감히 행복이라고 부른다.

 

솜씨 좋은 요리사가 영양가 많은 재료로 정성껏 조리하면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솜씨 좋은 요리사’와 ‘좋은 재료’ ‘정성껏 조리’와 같은 과정은 삭제되어 버렸다. 맛있는 음식, 곧 감정적 행복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행복 추구권이란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권리와 같은 것이다. 물론 재료도 주지 않고 조리 기구도 없다면 곤란하다. 그러나 식재료와 조리 도구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형편없는 재료와 무성의한 조리 과정을 조미료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현대인의 공통된 조급함이다. 긴 준비 과정은 생략하고, 왜 결과로서의 행복이 주어지지 않느냐고 따진다.

 

 

감정적 행복의 일시성

 

결과로서의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 불안한 상황을 벗어날 때 느끼는 안도감이나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주어지는 기쁨은 이내 사라진다. 도파민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졸업장을 받고 기뻐하는 졸업생은 도대체 무엇이 기쁜 것인가? 단지 종잇장에 불과한 졸업장을 손에 넣어서? 그럴 리 없다. 고생 끝에 마친 학위 과정 자체를 자축하는 것이다.

 

행복은 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연마하는 실천 과정이다. 자기 실현의 자유를 위해 우리 선조들은 오랫동안 투쟁했다. 행복권이 아니라 행복 추구를 위한 권리다. 제도적 불평등을 없애고, 기본적 자유를 얻어 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수준의 자유, 평등, 건강 등의 권리를 얻었다. 우리 사회를 사는 행복하지 않은 현대인, 그중 8할은 분명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행복을 찾아서

 

세상을 바꾸면 행복할 수 있을까? 운명을 바꾸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할 수도 없고 허락된 일도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지금의 자신, 그리고 일회성의 인생뿐이다.

 

인생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복 요리법에 대해서 옛 현인들이 이미 잘 알려 주었다. 친절과 인내, 겸손, 근면, 사랑, 절제, 순결, 용서, 순종, 소망, 지혜 등이다. 늙음과 죽음, 불안, 우울, 분노, 질투, 자기 비하, 시기, 방종 등 여러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지난 2년 동안 본지에 실린 이야기는 고금의 귀한 이야기, 선인이 남긴 오랜 지혜를 다시 풀어 쓴 것이다.

 

하지만 100가지 좋은 이야기도 본인이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시편 128편에 “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이 있어라.”라고 하였다. 이제 우리 손으로 직접 행복을 찾아 떠날 때다.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일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잔뜩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이 짧은 글이 마음의 고통으로 삶에 지친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다면 큰 ‘행복’이다.

 

* 2년 동안 ‘행복을 찾아서’를 써 주신 박한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12월호, 박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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