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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쇄의 울타리에서: 하느님 얼굴 찾기

62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16

[봉쇄의 울타리에서] 하느님 얼굴 찾기

 

 

봉쇄 수녀들의 삶은 24시간 ‘하느님 얼굴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전례 기도, 침묵 기도, 묵주 기도 등 하루의 삼분의 일이 하느님을 찾는 기도 시간이지만 노동, 레크리에이션, 공부, 독서, 수업, 공동체 나눔 시간도 결국 ‘하느님 얼굴 찾기’라는 우리 삶의 유일한 표적을 향해 있다.

 

봉쇄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답답하지 않은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오는 분이 많고, 하루 종일 그 안에서 기도만 하면서 뭐가 바쁘냐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실제 우리 관상 생활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매우 역동적이다.

 

날마다 같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지만, 한 해 전례 주기의 흐름에 따라 우리 마음과 생활은 교회와 하나 되어 움직인다.

 

관상 수녀들의 기도와 희생의 삶,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대한 교회와 신자들의 신뢰는 실로 대단하다.

 

우리 수도원 벗님들 중에 오이 농장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어느 날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수녀님, 제가 보험을 들려고 가는 길이었는데 마음을 바꿨어요. 하느님께 보험을 드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보험금을 수녀원으로 부치기로 했어요. 기도해 주세요.” ‘하느님의 보험’이 되는 것, 이것이 기도하는 수녀들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하느님 얼굴 찾기’는 결코 봉쇄 수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자, 곧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마음속 깊이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1.1.)라고 고백했다.

 

 

아버지의 얼굴, 연인의 얼굴

 

나의 ‘하느님 얼굴 찾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태중부터 신자였던 나는 어릴 때에 아버지요 보호자로서의 하느님을 찾았다. 부모님의 신앙 교육도 한몫을 했는데, 어머니는 달리기를 못하는 우리들에게 수호천사가 옆에서 함께 뛴다고 격려해 주셨고, 내가 술집이나 노래방 등 경건치 못한 장소에 가면 예수님과 수호천사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기다리신다며 걱정하셨다. 학교는 결석할 수 있으나 주일 미사와 주일 학교는 거르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느님께서는 모습을 바꾸시어 예수 그리스도라는 연인의 얼굴로 나를 끌어당기시기 시작하셨다.

 

모두가 빨간 셔츠를 입고 목청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전국을 들끓게 했던 2002년 월드컵, 주님은 나의 동생들을 신학교로, 봉쇄 수녀원으로 부르셨고, 맏이면서 가장 방탕아였던 나를 마지막으로 잡아채셨다.

 

‘봉쇄 수녀’ 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분이 많은데, 우리는 모두 놀라우리만치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실 말괄량이에 더 가깝다. 나도 학창 시절의 별명이 ‘털파리’였고 노는 데나 공부하는 데는 알아줬지만 조용히 앉아 명상하는 것에는 재주가 없었다.

 

 

영혼의 의사가 되라고

 

그런데 어떻게 관상 생활을? 본당과 대학 시절, 가톨릭 동아리 활동에 열성을 올리면서 만난 ‘파스카 청년성서모임’에서 말씀에 맛들이고 깊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 같다.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참조)’. 내가 본 그 보물은, 하느님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하느님께 내 전부를 바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 샤를 드 푸코처럼 다른 길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관상 생활, 봉쇄로 부르심은 너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만난 지 500일째 되던 날 500송이 장미를 바치며 세레나데를 불러 주던 너무나 착한 내 남자 친구와 헤어져야 하나? 벌써 4년 동안 힘들게 공부해 온 의학도의 길도 접어야 하나? 세상에서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는데….’

 

학교를 그만두기 전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 고민하던 어느 날, 성체 앞에서 내적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몸을 고쳐 놓으면 그는 다시 병들고 죽겠지만,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투신한다면, 그는 영원히 살 것이다.’

 

“조금 남았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가라.”고 권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는데, 수도 생활에 실패하면 언제든지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라는 뜻 같았다. 그러나 앞뒤 살피지 않고 순진한 마음으로 맡기고 뛰어드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에누리 없이 응답하고자 진실히 갈망하게 되면 타협이란 없다. 그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예.”라고 깨끗한 응답을 드릴 때까지는 그야말로 ‘내 마음은 찹찹할 수가 없었다.’

 

 

봉쇄의 뜰 안에서 세상 모든 이의 얼굴을 담고서

 

입회하던 날, 그해의 첫 눈이 내렸다. 그 깨끗하고 차가운 눈송이와 함께 나는 세상과 결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던 나는 이제 이 작은 봉쇄의 뜰 안에서 세상 모든 사람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날마다 전례와 기도, 노동 안에서 세상 형제들의 삶을 하느님께 바친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봉쇄 수녀의 성소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랑으로 타오르는 ‘심장’이라 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이라고도 하고 싶다. 하느님의 얼굴을 끊임없이 관상하는 성소, 세상 형제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의 시선을 모두 담아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바라보고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황보경 교회의 마리아 체칠리아(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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