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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상처 입은 치유자

65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1-14

[레지오 영성] 상처 입은 치유자

 

 

우리는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힘든 일이나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때 불평과 불만을 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그분께 의지하고 모든 것을 내맡길 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던져버리고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이 시험에 처한다면 어떻게 그 곤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아나톨의 작은 냄비’(2014)라는 그림책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잠시 그림책의 이야기를 요약하겠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작은 냄비를 끌고 다니는 아이, 아나톨이 보입니다. 어느 날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 작은 냄비는 그 후로 계속 그의 일부가 되어 따라다닙니다. 냄비를 끌고 다닌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상냥하고 재능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나톨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냄비를 끌고 다니는 아나톨을 어색해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냄비는 아나톨에게 끝없는 걸림돌로 자리 잡습니다. 앞으로 가려면 여러 번 넘어지고, 남들과 같은 ‘평범한’ 행동을 하려해도 그는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냄비가 떨어지기를 바라지만 냄비는 결국 떨어지지 않습니다. 냄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지만 냄비는 없어지지 않게 되다보니, 아나톨은 점점 화를 많이 내는 아이로 변해가며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힘들어집니다. 작은 냄비로 인해 모든 것이 힘들어진 아나톨은 결국 숨는 방법을 택합니다. 점점 더 작아지고, 더 작아져버린 그는 어느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갑니다.

 

점점 작아지는 아나톨 앞에 어느 날 자기와 똑같은 냄비를 끌고 다니는 한 아주머니가 나타납니다. 단지 아나톨과 차이가 있다면 보이지 않게 가지고 다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뿐, 그 아주머니는 아나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잘하는 것을 봐 주고, 아나톨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나톨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는 다시 명랑한 아이가 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먼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자신에게 불편했던 냄비였지만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아나톨이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 이 이야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해줍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아나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냄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작은 냄비는 다름 아닌 자신의 단점, 콤플렉스, 육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남에게 말 못할 고통이나 아픔 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남들과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차이’를 의미합니다.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고 불편하지만 운명같이 우리 자신에게 와서 늘 함께 해야 하는 냄비.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것이 ‘십자가’임을 고백합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거추장스런 냄비 등 사람마다 그런 냄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듯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각자 주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기 십자가가 다른 사람들 것보다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냄비에 짓눌려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던 아나톨에게 한 아주머니가 한줄기 빛으로 다가옵니다. 그 아주머니가 아나톨을 냄비와 함께 희망찬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상처 입은 치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머니도 고통스런 상처를 입었고 치유를 받았기에 이제 자기 상처로 아나톨과 같은 이들에게 사랑을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원천이 예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먼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과 상처를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은총으로 극복한다면 우리 역시 상처 받은 다른 이웃을 치유해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삶의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살게 된 아나톨은 분명 냄비로 인해 실망과 좌절 속에 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역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상처 받고 고통 속에 있는 이웃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1월호,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대교구 청담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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