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톨릭문화

sub_menu

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11: 대성당 천장을 돌로 올리다 - 제2 클뤼니 수도원 성당

67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01

[성당 이야기] (11) 대성당 천장을 돌로 올리다


제2 클뤼니 수도원 성당

 

 

지난 회에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으로 교회가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클뤼니 개혁은 그레고리오 개혁으로 이어졌고, 성직 서임권 문제로 교황과 황제가 대립하게 되었으며, 결국 카노사의 굴욕(1077년) 사건을 거쳐 보름스 정교조약(1122년)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이번 회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건축된 클뤼니 수도원의 성당 건축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수도원은 세상이 어둠의 긴 터널에 빠져들 때면, 교회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빛이 되살아나도록 자신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카롤링거왕조 이전까지의 5~7세기 서유럽의 침체기에 교회의 신앙과 영성에 숨을 불어넣었던 것도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가 세운 베네딕토 수도회였습니다(529년). 이후 베네딕토회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원들이 서유럽 전역에 생겨났고,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발전하게 되는데, 앞에서 다룬 생리퀴에 수도원과 아래 그림의 성 갈로 수도원이 대표적입니다.

 

성 갈로 수도원은 서양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상적인 수도원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820년으로 추정되는 양피지에 그려진 배치도는, 성 갈로 수도원이 단순히 기도하고 노동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도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수도원 안에는 대성당은 물론이고, 학교, 농업과 목축업의 농장, 양조장과 목공소, 병원과 제약소, 그리고 묘지에 이르기까지 삶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수도원은 수도 공동체의 순박한 공간이 아니라 도시와도 같은 종합적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급자족의 이상적 공동체는 결국 “기도하며 일하라”라는 베네딕토회 정신과 조금씩 멀어져 가면서, 세속 군주와 결탁하는 이상한 공동체로 전락하였고, 결국 또 다른 수도원의 등장을 예고한 것입니다.

 

최초의 클뤼니 수도원이 자리한 부르고뉴 지방은 북부의 노르망디와 함께 초기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건축을 이끄는 중심지였습니다. 지리적으로 부르고뉴는 지중해의 석조 건축술과 롬바르디아의 조적술의 영향을 받아서,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 석조 볼트 천장을 얹는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클뤼니 수도원 성당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는데, 그곳은 개혁의 상징이었고 성지순례의 중요한 거점이었기에, 웅장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에 지었던 목조 평천장의 성당 대신 석조 볼트 천장을 가진 제2 클뤼니 성당이 증축되었습니다. 이로써 천장과 벽이 일체의 석구조를 이루며 ‘수직’이라는 중세의 중요한 건축요소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바실리카의 긴 네이브에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트란셉트가 추가되었고, 네이브 양쪽에 아일이 하나씩 붙은 3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스트엔드는 방사형 소성당 없이 성가대석과 앱스를 중심으로 지어졌고, 성가대석 옆에 직사각형의 소성당이 추가되었으며, 천장은 네이브뿐만 아니라, 아일, 트란셉트, 소성당 모두 석조 배럴 볼트로 시공되었습니다. 이러한 제2 클뤼니 성당의 일체성과 수직성의 구조는 부르고뉴 지방의 다른 성당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더 멀리는 고딕 성당을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2019년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0 2,258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