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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시온산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184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2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시온산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


 

겟세마니에서 수난의 잔을 멀리해달라고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유다가 데려온 무리에게 붙잡히십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그 무리는 예수님을 대사제 카야파의 집으로 끌고 갑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받으시며 밤을 새우시고 이른 아침에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지시지요.

 

그런데 그 대사제의 집 뜰에서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기초로 세우시며 이름마저 반석을 뜻하는 케파, 곧 ‘베드로’로 바꿔 주신 요나의 아들 시몬이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부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예고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스승님과 함께 죽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극구 부인했지요(마태 26,31-35; 마르 14,27-31; 루카 22,31-34; 요한 13,36-38). 그래서 예수님이 붙잡혀 끌려가셨을 때 다른 제자들이 모두 달아났지만,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고 대사제 관저 안뜰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 청동상.

 

 

그러나 베드로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예수와 한패가 아니냐고 묻자 베드로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는데,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닭이 웁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서 슬피 웁니다(마태 26,69-75; 마르 14,66-72; 루카 22,55-62; 요한 18,15-18. 25-27).

 

예수님께서 모욕과 조롱 속에 밤을 새우시고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그 대사제 관저 자리에는 ‘닭 울음소리의 성 베드로’(St. Peter in Galicantu)’라고 부르는 기념 성당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음을 깨닫고는 슬피 울며 회개했다고 해서 우리말로는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라고 부릅니다. 닭 울음소리를 뜻하는 라틴어 Gali-Cantu를 그대로 음역해 ‘갈리칸투’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검은색 둥근 지붕 위에 황금으로 된 닭 모형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겟세마니에서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시온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비탈면에 있습니다. 빛바랜 검은색 둥근 지붕 위에 황금으로 된 닭 모형이 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당 입구의 정문에도 닭이 그려져 있지요.

 

– 갈리간투 위층 성당(좌) 아래층 성당(우).


 

시온산 경사면이라는 지형적 여건을 활용해서일 수도 있고 옛 집터를 이용한 이유도 있겠지만,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건물은 4층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위의 두 층은 성당입니다.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육중한 청동 문이 나옵니다. 최후 만찬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예언하시고 베드로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하는 모습을 표현한 부조가 청동 문 전체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문 위에는 “주님께서는 나거나 들거나 너를 지키신다”는 시편 121장 8절의 말씀이 라틴어로 적혀 있습니다.

 

문을 열고 성당 안에 들어가면 중앙 제대 뒤에 정면으로 예수님의 재판 장면을 그린 모자이크화가 있고, 왼쪽에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표현한 그림이 있습니다. 천장에도, 성당 뒷벽에도 화려한 모자이크화가 순례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한 층을 내려가면 조금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그림, 밖으로 나가 울면서 회개하는 그림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베드로가 대답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차례로 그려져 있습니다.

 

– 지하감방(좌) 위층 성당 청동문.


 

뜨락으로 나가면 카야파 대사제 집 안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표현한 청동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안에 갇혀 계신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면서 당황해하는 표정입니다.

 

아래층 성당에서 한 층 더 내려가면 지하 감방을 감시하는 감시병들의 방이 있고 그 아래에 예수님께서 밤새 갇혀 지내셨다고 하는 지하 감방이 있습니다. 이 지하 감방은 위로 올라오는 다른 계단이나 통로가 없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밧줄이나 사다리 같은 것을 내려 주지 않으면 위로 올라올 수 없게 돼 있었지요. 지금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지하 감방에서 관련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대사제 카야파 관저에서 밤새 고초를 당하신 일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에 세워졌다는 기념 성당

 

바깥으로 나오면 키드론 골짜기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붙잡혀 카야파 대사제 집으로 끌려오실 때 걸으셨을 그 길입니다.

 

– 키드론 골짜기로 이어지는 계단.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있는 이곳이 정말로 2000년 전 카야파 대사제의 집터인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카야파 대사제의 집은 원래 현재의 자리보다 훨씬 높은 시온산 정상 부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예수님 시대의 유물들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확한 장소가 아닐지 모르지만,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있는 현재의 자리는 비잔틴 시대 때에 이미 기념 성당이 있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카야파의 집으로 여겨졌고 순례 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5세기 중반에 세워졌던 큰 성당은 529년 사마리아 폭동 때에 파손됐고 7세기 초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12세기 초 십자군들이 다시 성당을 세웠으나 한 세기 후 다시 투르크인들에게 파괴되는 등 수난이 잇따랐습니다. 현재의 성당은 1930년대 초에 세워졌습니다.

 

시온산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은 주님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쉽사리 주님 뜻을 외면하고 거스르는 연약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순례지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8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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