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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19년 8월 21일 (수)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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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신앙교리: 생명을 베푸시는 성령과 성체성사

30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08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생명을 베푸시는 성령과 성체성사

 

 

생명의 힘이신 성령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표상은 ‘바람’(風), ‘물’(水), ‘불’(火) 등입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음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모태가 되고 먹이가 되는 상징들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성령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힘’(力)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인간에게 생명을 베푸는 분’으로 이해됩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베푸심으로써 결국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인간의 ‘위로자’이시고, 항상 교회 안에 계시는 ‘조력자’(요한 14,16 참조)이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고, 그분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십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세례와 성령으로 (새로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3,2-5)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전례와 성사 안에서의 성령의 역할

 

전례는 ‘성령과 교회가 함께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드리는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전례 안에서, 또한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과 은총을 선사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교회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 안에 성사를 세우시고, 그리하여 교회가 당신의 현존을 경축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전례와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구원을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선사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성사들 안에서의 성령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신비를 성사적으로 베푸실 때에도 구원 경륜의 다른 때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자기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고, 믿는 회중에게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고 나타내 주시며, 당신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현존하게 하고 실현하신다. 그리고 끝으로 친교의 성령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명에 결합시키신다.”(1092항)

 

 

성령의 힘 안에서의 성체성사

 

모든 성사의 어머니인 성체성사는 ‘성령의 힘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봉헌이며 교회의 봉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몸과 피의 봉헌’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체성사 안에서의 이러한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령을 통하여 계시됩니다. 결국 성령께서 성체성사를 통해 항상 새롭게 인간에게 오시고 선사되는 것이지요. 성체성사를 생기 있게 하고 그 성사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비는, 성찬의 전례에서의 ‘성령청원기도문’(Epiclesis)은 이 점을 잘 드러냅니다. 이는 히폴리투스에게서 유래하는 고대교회의 기도문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신학적으로는 성령에 관한 고찰에 깊이 나아갔던 동방교회와 우리 서방교회간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도문은 성체성사 안에서의 성령적인 전망, 곧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령강림의 성사인 성체성사

 

“성사들은 언제나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16항) 성체성사가 ‘생명의 성사’이고 ‘구원의 성사’인 것은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사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눈에 보이는 표징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도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령을 통해서이고,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또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는 것도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들 가운데 살아 계시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성령의 새로운 강림’이며 ‘성령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라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성령의 힘 안에서 성부께로 바쳐지는 그리스도의 봉헌이고 교회의 봉헌’이며, 그로써 성령은 언제나 인간에게 새로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해서 성령 안에서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고, ‘성령 안에서 행해지는 교회공동체의 축제’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교회의 미사는 성체성사에 임하시는 ‘성령을 교회 공동체가 기쁨으로 맞이하는 축제’로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파견을 드러내는 성체성사

 

성령의 파견 없는 성자의 파견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십자가, 죽음과 부활, 곧 그리스도의 사건 모두가 성령과 관계된, 성령께서 가능하게 한 실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 행위를 기념하는 표지’인 동시에 ‘성령의 파견을 드러내는 표지’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사랑을 나누도록 하는 성사’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인간은 사랑으로 불타게 되고 굳세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우선 ‘신적인 사랑의 축제’로서, 그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서로 간의 사랑의 나눔’이 이루어집니다. 성체성사는 또한 ‘인간적인 사랑의 축제’로서,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의 사랑 또한 하느님에게 전달’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2007년 2월22일에 발표하신 권고 ‘사랑의 성사’는 이러한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완벽한 사랑의 친교이십니다. 창조 때에 이미 인간은 하느님 생명의 숨을 나누어 받도록 부름 받았습니다(창세 2,7 참조).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생명 그 깊숙한 곳까지 동참하게 되는 것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또 한량없이 부어 주시는 성령(요한 3,34 참조) 안에서입니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히브 9,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의 선물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생명 자체에 동참하게 하십니다.”(8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영성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양식이 육체에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영성체는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인 생명에 그 효과를 가져온다. ‘성령 안에서 생명을 얻고, 또 성령 안에서 생명을 주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살을 받아먹는 영성체는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새롭게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나그넷길의 양식인 성체로 양분을 받아야 하며, 우리가 죽을 때에는 이 양식을 노자로 받게 된다.”(1392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7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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