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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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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진리를 찾아서: 영혼의 움직임 - 선한 영과 악한 영

206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11-18

[진리를 찾아서 - 영혼의 움직임] 선한 영과 악한 영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질 때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자기 성찰의 시간이 곧 기도의 시간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기도는 구원을 향해가는 항해에서 항로의 좌표를 들여다보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마태 24,42; 25,13; 마르 13,3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일상을 잘 돌아보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면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끄는 내적인 움직임을 느끼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한심하게 이게 뭐 하는 거지?’ 하며 스스로 허탈해하는 기운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지난 2월 호에 다룬 내용 가운데 내게 용기를 주는 움직임인 ‘위로’와 내 힘을 빠지게 하는 ‘실망’과 같은 내적인 움직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것을 단순히 정서적인 측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실제적인 힘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저서 「영신 수련」에는 이를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는 규범들”이라 정리합니다(313-336항 참조).

 

 

경험

 

스페인어를 배워 본다고 학원에 등록하고 시간을 내려 애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원에 수업료를 내고 나니 의욕이 불타올랐습니다. 몇 년 동안 마음만 먹고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던 계획이라 그 순간 마음이 뿌듯했고 학원에 다니는 것 또한 즐거웠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일정 때문에 수업에 하루 빠졌는데 그 뒤로 일이 겹칠 때면 수업을 빼먹는 일이 더욱 쉬워졌습니다.

 

학원에 등록할 때는 “이제 드디어!”라는 만족감에 벌써 스페인어를 다 배운 것처럼 근거 없는 자신감을 느꼈고, 수업에 빠져도 그날의 과제를 자습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자습하지 않아 결국 허황된 계획으로 끝났습니다. 그 뒤로도 하는 일과 수업 시간이 자꾸 겹치는 바람에 점점 더 이 공부와 멀어져 가는 것을 수수방관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점은 우리 마음에 나태함이 끼어들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나태함은 우리 육체에도 영향을 줍니다. ‘학원에 갈까, 말까?’ 하는 사안에 대해 ‘움직일 필요 없어!’라는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그렇지만 몸도 움직이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삶에서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두 번의 엇박자만으로도 균형 잡혔던 일상을 깨는 데 충분합니다.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것이 지금 제 상황에서 매우 절박한 일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만일 당장 유학이나 시험을 앞둔 경우라면 이야기는 심각해집니다. 열심히 했다면 저 자신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심하게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찰

 

이런 내적인 움직임에 ‘선한 영’과 ‘악한 영’을 등장시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한 영은 개인의 영혼에 유익한 일들이 더 활발해지도록 격려하고, 반대로 악한 영은 개인의 영혼을 나태와 무기력으로 빠지게 합니다. 이것이 두 영의 특징입니다.

 

두 영의 움직임을 좀 더 살펴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파악하게 됩니다. 선한 영은 선한 일을 할 때 힘을 실어 주고, 악한 영은 악한 일을 할 때 정신을 더 못 차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학원에 등록하여 자기 발전을 꾀한 것은 선한 일이니 처음 단계에 격려를 받은 게 맞습니다. 그런데 나태함이 끼어들면서 제 선한 의지가 무기력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학원에 가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부담을 가지면 가질수록 학원을 빼먹어도 되는 변명으로 작은 일을 핑계 삼게 되었습니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예를 들어 봅니다. 도박에 재미가 들린 사람이 있다고 해 보죠. 이때 악한 영은 도박에 더욱 심취되는 방향으로 사람의 영혼을 이끌어 갑니다.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흥분하도록 유혹하는 겁니다.

 

그 반면 선한 영은 이때 도박에 빠져가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양심의 가책이나 흐트러진 삶을 자각하며 이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냅니다. 바람직한 일을 할 때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해 봅니다.

 

선한 영 :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 일이 힘든 일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힘들어도 그 안에 기쁨이 있다면 그건 좀 더 확실한 선한 영의 작용입니다.

 

반대로 악한 일을 할 때는 가책을 느끼게 만들며, 이는 올바른 일을 하라고 직언하는 충신과 같습니다. 악한 일을 하는 이는 선한 영의 소리를 편히 들을 수 없습니다. 선한 영은 이렇게 하여 한 사람의 영혼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제어해 주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줍니다.

 

악한 영 :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회의감이 들도록 하거나 그 일을 하면 삶이 고달프다는 둥 걱정과 근심, 두려움을 갖도록 심기를 건드립니다. 한편, 자포자기한 사람에게는 ‘잘했군, 잘했어!’ 하며 응원합니다. ‘나까짓 게 뭐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겠어?’ 하며 자기 신뢰나 자존감을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의 내면을 마귀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그것을 두려운 존재로 보는 이에게 위력적일 뿐입니다. 곧 그 유혹에 끌려가면 갈수록 위력적일지 몰라도, 내가 마음을 바꿔 단호하게 “꺼져. 난 네가 원하는 걸 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면 꼬리를 내리고 사라집니다.

 

또 악한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비밀스럽게 꾸미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끼리 그들의 관계를 비밀로 하자고 서로 유혹하듯 말입니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악화되는 일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의 문제를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놓고 상의한다면 악한 영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실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 수 있게 우리를 이끌어 주는 선한 영은 늘 ‘위로’를 줍니다. 하지만 악한 영은 우리를 위협하거나 유혹함으로써 ‘실망’에 빠뜨립니다.

 

우리가 아직 실망의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각자의 나약한 부분을 호시탐탐 노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개인은 자신이 어떤 부분에 약한지를 알아 두는 게 중요합니다. 자만감, 성적인 자극, 분노, 시기, 질투 등 다양한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나의 약점이 공격받는다고 느낀다면, 이런 나의 난처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나의 약점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겸손함을 되찾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종종 악한 영은 선한 영의 모습을 가장하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 이가 피정을 통해 기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상에 돌아와서도 시간을 내어 기도하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는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해 놓은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는 선한 영의 얼굴을 한 악한 영을 경험한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영은 어려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했을 것인데, 그와는 반대로 아예 거짓말까지 하는 결과를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사람이 ‘실망’하는 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전합니다(「영신 수련」, 322항 참조).

 

첫째, 기도 생활에 게으르게 될 때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 우리를 단련시키시려는 뜻입니다. 꼭 위안이 없어도 삶을 이끌 힘을 확인해 보시는 겁니다. 셋째, ‘실망’을 통해 ‘위로’가 우리 마음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 뚜렷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실망 안에서 더욱 뚜렷한 하느님의 위로와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위로’의 시간에 간직하게 된 은총에 감사하고 그것을 잘 기억하는 것은 ‘실망’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힘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다 지나갈 것이고 다시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 박종인 요한 - 예수회 신부.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성찰과 성장’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교회상식 속풀이」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박종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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