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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의 수업시간

70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9-08

[레지오 영성] ‘레지오의 수업시간’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활동을 주회합과 함께 ‘레지오의 수업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레지오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선임자의 모범을 본받으며 단원의 기본을 습득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레지오 특유의 도제제도입니다. 수업시간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교육자의 평생을 위한 것이며, 모든 단원은 스스로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표준을 익히고 이것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이란 비단 레지오 단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지상의 삶을 각자의 처지에서 본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하는 신자들이 하나로 모일 때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세상에 재현하는 교회의 사명이 달성됩니다.

 

레지오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개인의 성화와 사도직 수행은 이런 교회의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학생에게 학력의 기본이 되는 과목이 있듯이 단원에게도 신앙생활의 힘이 되는 기본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실천입니다. 레지오 회합과 활동은 학생이 학력을 키우듯이 이런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며, 그 결실은 얼마나 자기중심성과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직자의 지도를 따르고 미사참례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는 전통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살고자 하는 평신도의 자발성을 분발시키려는 현대적 입장을 취합니다. 레지오 시간은 평신도에 의한 자율적인 신앙교육의 모델이고, 이는 성직자 중심의 신앙생활 형태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초창기에 레지오가 진행한 사도직 활동들은 모두 단원들의 자발적인 제안으로 추진되었으며, 지도신부는 평신도의 잠재력을 일깨워서 격려하고 도와주는 지지자와 안내자의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미사 중단에 따른 신앙생활의 영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종교활동이 제한되면서 미사참례를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레지오는 한동안 개학을 미룬 학교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개학이 늦어져 수업을 받지 못한 학생들의 학력 평가가 관심을 끌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중위권이 사라져 모래시계형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중위권 학생이 수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번 미사 중단을 계기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리라 예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레지오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자발적인 레지오 수업으로 스스로 신앙생활을 영위할 역량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이후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앙의 개인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양극화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부의 강제력이 발동되기 전에 먼저 성사 집전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교회 책임자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의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사를 받지 못하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예상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직자의 감소로 성사 집전이 불가능해지는 미래를 예상하였고, 평신도만으로 구성된 교회를 염두에 두면서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회상을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교회가 스스로 성사 거행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상황은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미래의 상황을 현재로 경험하였습니다.

 

공의회의 주목을 받았던 레지오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진면목을 발휘해야 합니다. 레지오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성사 집전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세상 안에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할 역량을 얼마나 지녔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심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는 단원은 이번 기회에 심기일전하여 레지오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도신부의 지시에 의존하거나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려는 합리성으로는 신앙이 성장하기는커녕 유지할 수도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프랭크 더프는 사도직 활동을 하면서 세속적인 논리를 좇아 신앙이 갖는 무한한 힘을 구속하거나, 하느님에게 귀속하는 일에 인간적 의견을 적용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경계하였습니다.

 

그는 교회 내에서 자연적 개념을 초자연적인 것의 우위에 두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을 우려하였습니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일을 하는 만큼 하느님의 기적적인 협조나 도움을 얻으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는 초기의 활동 경험에서 이미 초자연적인 것은 세속적인 요구를 외면하게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자신들이 디딘 발밑이 깊은 물이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태도와 각오로 활동하면서 초기 단원들은 그들이 딛고 있는 물이 차츰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레지오는 비종교적 분야도 중요한 활동에 포함시켜 레지오의 원리원칙이 세속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면서, 인간 영혼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생활의 모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성사 집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방법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사태로 미사 집전이 중단되면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한 공의회의 가르침이 그동안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평신도에 의해 설립되었고, 처음 신앙을 받아들인 신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고유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갖추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 모습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상 밖의 이유로 미사가 중단되면서 우리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성사에 의존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고, 미사가 없는 가운데서도 신앙을 실천했던 고유한 신앙생활 모습이 단절된 것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뜻있는 평신도들이 나서서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신앙생활을 재현해 나간다면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생활의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현재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신심 단체 가운데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 신앙 선조들의 신앙생활과 가장 유사합니다. 평신도에 의해 신앙이 전수되고 신앙의 중요한 가르침에 대해 평신도들이 함께 연구하는 모임이 있는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단원들은 레지오 수업시간에 우리 신앙 선조들이 열성적으로 신앙을 배우고 익혔던 마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단절된 신앙 선조들의 삶을 레지오를 통해 비슷한 모습으로나마 따라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익히고 성장하도록 성모님께서 마련하신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9월호, 권용오 마티아 신부(안동교구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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