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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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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특별 전교의 달 신앙의 증인 (상) 가경자와 하느님의 종 등 9명

55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08

특별 전교의 달 ‘신앙의 증인’ (상) 가경자와 하느님의 종 등(9명)


성화된 삶으로 하느님 전한 ‘신앙의 증인’ 기억하고 본받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특별 전교의 달’이 시작됐다. 특별 전교의 달은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세상에서 선교사들이 수행하는 활동에 관하여’ 쓴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며 선교 사명을 새롭게 일깨우기 위해 선포됐다. 교황청은 특별 전교의 달 공식 인터넷 누리방(www.october2019.va)을 만들어 전 세계 신자들에게 그 의미와 활동을 전하고 있다. 누리방을 통해 교회 역사 안에서 성화된 삶으로 하느님을 전한 인물 33인을 ‘신앙의 증인’으로 소개했는데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과 최경환 성인도 포함됐다. 특별 전교의 달을 맞아 선정된 그들의 삶과 신앙을 세 차례로 나눠 알아본다. 신앙의 증인 33인 가운데 성인은 16명, 복자는 8명, 그 외(가경자, 하느님의 종 등)는 9명이다. 이번 호에서는 가경자와 하느님의 종, ‘신앙의 증인’들을 살펴본다.

 

 

가경자와 하느님의 종은 전 세계 개별 교회에서 시복을 추진 중인 이들이다. 하느님의 종은 시복 예비심사절차에 들어간 대상자들이며, 가경자는 하느님의 종 가운데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영웅적 덕행’을 인정한 이들이다.

 

가경자 아우구스투스 톨턴 신부는 미국 최초의 흑인 사제다. 남부 미주리 주 노예 출신으로, 남북전쟁 당시 북부 일리노이주로 건너가 자유인이 됐다. 사제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후원자들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사목하려다가 “미국에도 흑인 사제가 있어야 한다”는 당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조반니 시메온니 추기경의 권고에 따라 미국으로 돌아왔다. 백인 사제들과 신자들의 차별과 모함을 견뎌내며 하느님 말씀을 전했다. 설교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 흑인 신자들의 모범이자 아버지가 됐다.

 

가경자 하인리히 한은 의사로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병원 문을 항상 열어놓았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교황청 전교기구를 설립한 폴랭 마리 자리코를 알게 되면서 선교 사업에 눈을 떴다. 의사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하느님 말씀을 실천했고, 베를린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가톨릭 정신을 전파했다.

 

가경자 안나 마리아 마들렌 델브렐 선교사는 ‘20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모범’으로 손꼽힌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지만, 29세에 회심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을 몸과 마음으로 깨달았다. 이후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살았고, 유럽 각지를 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전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사는 아프리카인들의 자립과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줬다.

 

하느님의 종 루이지 조반니 지우사니 몬시뇰은 20세기 유럽 혁명시기에 이탈리아 가톨릭 학생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사회와 교회가 혼돈을 겪고 있을 때 복음 정신을 바탕으로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며 세속화에 맞서 싸웠다.

 

하느님의 종 메리 글로우레이 수녀는 호주 출신으로 원래는 의사였다. 인도에서 선교한 스코틀랜드 의사 아그네스 맥라렌의 삶을 알게 되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도로 부르신다고 느꼈다. 호주에서의 부와 명예를 모두 포기하고 인도로 건너가 아무도 찾지 않는 인도 오지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하느님의 종 로렌스 풀리야나스 몬시뇰과 포르투나투스 탄호이저 수사는 ‘가난한 이들의 사도이자 아버지’로 불렸다. 인도 출신의 풀리야나스 몬시뇰은 교회의 가장 큰 보물은 가난한 이들이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 또 계급과 신앙에 상관없이 모든 이를 똑같이 대하며 ‘환대와 사랑의 모범’이 됐다. 독일 출신의 탄호이저 수사는 인도에서 선교하며 인도 의료인을 양성하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했다. 인도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돌봤다.

 

프랑스 출신 샤를 라비주리 추기경은 중동 지역은 물론 알제리,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 등 아프리카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모두를 존중하는 사목으로 존경받았다. 유럽 주교들에게 노예제 폐해를 설파하며 폐지에 앞장서고 아프리카선교회와 수녀회를 설립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6일, 박수정 기자]

 

 

‘신앙의 증인’ 김수환 추기경

교회 쇄신과 사회 참여 이끌고 억압받는 이들의 대변자 역할

 

 

특별 전교주일을 맞아 ‘신앙의 증인’(Witnesses)으로 김수환 추기경<사진>이 선정됐다. 시복 과정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한’(1티모 6,12) 이들에게 붙이는 증거자(Confessor)와는 다른, ‘일반적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뜻하지만, 그 의미가 축소되는 건 아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전교기구는 김 추기경이 한 생애 동안 교구 사제로서, 주교로서, 추기경으로서 믿고 따랐던 예수님을 증언한 삶을 전기 형식으로 소개하고, 30년간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삶에 주목했다. 특히 김 추기경이 교회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쇄신과 사회참여의 원칙을 제시했던 것을 높이 평가했다. 나아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깊은 사목적 관심을 표명하고 함께함으로써 이들의 옹호자가 됐고, 남북으로 갈라져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던 겨레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남북 교류와 대북지원을 촉진함으로써 북방 선교에 투신했던 점을 상기했다.

 

김 추기경이 실천했던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추기경의 사회교리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둔 공동선 추구를 목표로 했습니다. 사회구조와 정치체제는 공동선에 이바지해야 하고, 교회는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같은 인식에 바탕을 두고 197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김 추기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였다는 점도 부각해 장애인과 갇힌 사람들, 집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찾아갔고, 농부와 노동자들을 위해 투신했음을 상기했다. 나아가 교구 안팎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사목 기구와 사회단체를 설립했다는 점도 특기했다.

 

교황청 전교기구는 2009년 2월 김 추기경이 선종한 뒤 38만 7000여 명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했다고 전하면서 선종 10주기가 지난 요즘도 매일같이 수백 명의 참배자가 그의 무덤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6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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