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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다섯 가지 유혹

223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22

[사회교리] 다섯 가지 유혹 (1)

 

 

새해부터 사회교리를 주보에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사회교리는 반대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회교리는 주로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서 정의는 대개 분배의 정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결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의 문제는 ‘밥그릇 싸움’과도 상통하지요. 인간사에 밥그릇 싸움만큼 치열한 싸움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이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먼저 숨을 좀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교황님께서 지난 2014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폐막 연설에서 언급하신 다섯 가지 유혹이 성찰을 위한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는 첫 번째 유혹은 완고함(hostile inflexibility)에 빠지는 태도입니다. 이미 정형화된 법이나 제도, 문자에 갇혀서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에 자기를 개방하지 못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러한 유혹은 예수님 시대 열혈당원, 율사와 법률가들이 빠져들었던 함정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통주의자’들과 ‘지성인’들도 겪는 것이라고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를 심리학의 용어로 옮겨 보자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위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인데, 이 유혹에 빠지면 신앙의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면을 외면합니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만을 토대로 판단하고, 다른 가능성이나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못합니다. 새로운 시도와 쇄신의 길을 찾아보자고 할 때 장황한 언사와 복잡한 전문용어를 나열하면서 결과적으로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막아서는 태도를 말합니다.

 

둘째 유혹은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붕대를 감으려는 태도입니다. 문제의 원인과 근본을 짚지 못하고 대증요법과 표피적인 해결책에 매달리는 유혹을 말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를 “dogooders”와 “소위 진보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겪는 유혹이라고 하셨습니다. “dogooder”는, 스스로는 언제나 옳은 일을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뜻합니다. 대개 사회 문제들은 긴 시간 동안 쌓여온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사정들이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투표, 하나의 법, 한 번의 조치 같은 것으로 그 문제들을 다 풀 수 있을 것처럼 해결책을 말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지요.

 

새해 벽두에 먼저 교황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봅시다. 우리가 일체의 쇄신을 거부하는 완고한 태도나, 근본적인 성찰 없이 쉬 끓고 쉬 식는 태도를 멀리 할 수 있도록 성찰해 봅시다. [2019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사회교리] 다섯 가지 유혹 (2)

 

 

지난번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경고하신 다섯 가지 유혹 중에서 두 가지, 곧 완고함에 빠지는 유혹과 상처를 치유하기 전에 붕대부터 감으려는 유혹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완고함이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표피적인 해결책에 매달리는 유혹 말씀입니다. 이어서 다음 세 가지 유혹을 봅시다.

 

셋째는 돌을 빵으로 만들려는 유혹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누리는 부(富)의 총량은 단군 이래 어느 시절보다 큽니다. 가까운 예로, 전화기 한 대를 몇 가구가 함께 쓰던 시대에서 어린애들조차 손전화 하나씩 들고 다니는 시대로 옮겨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소통은 더 어려워지고 고독한 개인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들고 우리 식구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 돌볼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메마른 성정이 우리 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대비를 이루는 시대입니다. 물질과 자본의 증대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반증인 셈입니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는데 살기가 오히려 더 퍽퍽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풍요의 열매가 제대로 나눠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부를 쌓아올리는 데만 정신을 쏟고 분배 정의나 나눔의 실천을 뒷전으로 미룬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와 연대의 정신을 저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가난과 고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을 우리가 서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넷째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나 단체의 책임을 맡은 분들이 피해야 할 유혹입니다. 십자가는 무겁지만 묵묵히 지고가야 할 천국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아파하는 이들, 가난한 이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십자가를 저버리게 됩니다.

 

다섯째는 교회의 유산을 포기하려는 유혹입니다.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쇄신을 거듭하면서 지상의 순례길을 걸어야 하지만,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곧 교회를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선호나 이해관계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교회가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를 매도하거나 저버리는 것은, 교회를 동원의 대상이나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여기는 태도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따라 다양성 안의 일치를 이루려는 신앙인의 목표이자, 모든 이를 당신 품에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근본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사회교리를 연구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2019년 3월 3일 연중 제8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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