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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19년 10월 18일 (금)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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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혹독한 시련을 받은 아브라함

63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12

[허영엽 신부의 ‘나눔’] 혹독한 시련을 받은 아브라함

 

 

지난 사순시기와 부활절을 맞아 몇몇 본당과 기관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특강의 주제는 주로 창세기의 인물, 특히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강을 준비하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아브라함과 관련해 재미있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그 내용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떠나라!”는 한마디에 즉각 응답하여 살던 곳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바로 떠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가나안에 도착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에게 첫 번째 시험이 닥쳐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부인 사라이(후에 이름이 사라로 바뀜)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인을 탐내는 사람들에 의해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아내를 빼앗길까봐 두려워졌습니다. 결국 부인을 누이동생이라고 부르기도 작정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점잖게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내를 판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라는 곧 왕궁에 불려 들어가게 되고 파라오의 여인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덕분에 큰 대접을 받게 됩니다. 당신의 구원 계획을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그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파라오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불러들인 죄로 온 가족이 무서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진실을 알게 된 파라오는 아브라함을 불러 꾸짖고는 그를 쫓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많은 재물을 갖게 되었고 그 기반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앞에 두 번째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부자가 된 후 일어난 가족 간의 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르에서부터 함께해온 조카 롯은 단순한 혈육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물 앞에서 가족들은 다투고 분열하게 됩니다. 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롯에게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보고 좋다고 하면 나는 오른쪽을 차지할 것이고, 오른쪽이 좋다고 하면 나는 왼쪽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먼저 선택하여라.”라고 제안합니다. 롯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훗날 망하게 되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고, 아브라함과 헤어지게 됩니다.

 

롯과의 분쟁도 아브라함에게는 큰 시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가족과 등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롯이 소돔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에 그 곳이 더 비옥하고 기름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곳은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는 많은 손해를 봤지만 결국에는 이익을 본 셈입니다. 하느님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 양보하는 사람에게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혹은 항상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해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선조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인 창세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더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시험 기간을 주신 것이 아닐까요? 사실 그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해결하려 했었고, 신앙적으로는 빗나간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아야지’, ‘회개해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더 크고 센 유혹이 달려옵니다. 예수님께서도 단식 후에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작은 유혹을 잘 넘기고 나면, 후에 더 큰 시련이 온다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 이제 잘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지고 나면 곧바로 또 다른 시험이 닥쳐옵니다. 유혹은 항상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앙생활 안에서 늘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아브라함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과 가치에 먼저 의지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련은 바로 우리의 시련이기도 합니다.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한 아브라함은 여전히 더 큰 시련에 흔들립니다. 이어지는 시련은 다음 호에 계속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되실 때, 아브라함의 시련을 생각하며 이번 호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 12장과 13장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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