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신학자료

sub_menu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사이버 폭력과 악플: 악플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

170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17

[경향 돋보기 - 사이버 폭력과 악플] 악플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

 

 

한국은 뉴미디어 강국인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겠다고 기치를 올린 게 엊그제 같다. 세계 최고의 정보 통신망 구축,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기술 사용 능력 등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보화 선진국이라는 허명과 달리 일상의 현장에서 정보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집단 지성 출현과 정치적 민주화?

 

정보화는 단지 디지털 환경의 하부 구조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룩되지는 않는다. 증가한 정보량에 걸맞는 산업 구조는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심성 체계와 관행 등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보화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다들 알다시피, 정보 인프라를 감당할 만한 문화적 기반은 한참 모자라 보인다.

 

10여 년 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의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물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방식과 형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위치와 취향을 중심으로 세계를 가늠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우리의 신체 자체가 미디어적으로 확장되었다고도 하는데 허황한 논평만은 아닌 것 같다. 스마트폰은 손에서 떠나지 않고 우리의 인지 체계는 네트워크와 24시간 접속해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특성은 집단 지성의 출현을 부추기기도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집합적 커뮤니케이션이 문제 해결의 속도를 앞당기고 그 방도를 찾아 주었다. 때마침 이집트에서는 ‘자스민 혁명’ 소식까지 들려왔다. 미디어의 사회적 성격이 정치적 민주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징표였다. 마침내 세상이 경천동지하는구나 싶었다.

 

돌이켜 보면 절반쯤은 맞지만 절반 이상은 틀렸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네 삶의 좋은 점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점 또한 증폭시켜 왔기 때문이다. 일별해 보자.

 

● 폭력 문화가 언어폭력, 명예 훼손, 스토킹, 성폭력, 신상 정보 유출, 따돌림 등 사이버 폭력의 형태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났다.

 

● 사회적 고립 상태는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으로 전이되어 각종 문제의 심리적 기원이 되었다.

 

●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약물뿐 아니라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 중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외설물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일상 자체를 포르노화하기도 했다.

 

● 사람들의 생계와 자존감을 위협하던 노동 유연화 문제는 디지털 창의 노동의 등장과 함께 수탈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 1인 미디어를 비롯한 뉴스의 생산과 소비 환경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자극하며 가십 수준의 정보 쓰레기를 양산하는 데 일조한다.

 

●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게 된 세상에서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 문제가 날로 심각해져 여론의 세대별 분열을 초래하였다.

 

● 집단 지성으로 정치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란 믿음과 달리 온라인 미디어를 통한 정치적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문제가 심각하다.

 

● 4차 산업 혁명을 거론할 정도로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막상 데이터의 주인인 일반 시민의 정보 인권 감수성은 부족하기만 하다.

 

생활과 세상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새로운 문제가 생겼고 양상은 더 복잡해졌다. 사실 디지털, 온라인, 사이버 같은 어떤 말을 붙이더라도 대개 문제의 원인은 아날로그, 오프라인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곧 우리가 겪는 대다수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이를 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일상과 제도, 문화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다만 디지털 환경은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성향을 더욱 촉진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비사회성의 ‘잠금 해제’

 

사람들은 언제나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사회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질 사회적 평판이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이 안전장치의 잠금을 해제시킨 결과로 나타난다. 자신의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분노를 쏟아내고 비난을 가하고자 하는 충동을 제어할 까닭이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있거나 오프라인에서는 멀쩡하던 사람이 혼자 있거나 온라인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나는 악플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심리적 위압감을 느끼게 하며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하는데,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축이 작동한다. 하나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또는 그러고자 하는 잠재적 성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와 같은 성향의 분출을 부추기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다.

 

얼마 전 여성 연예인들에게서 일어난 자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별반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개인들의 내밀한 경험을 어찌 다 측량할 수 있을까. 각각의 경우는 각자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일정한 경향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간주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고 또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인터넷, 심지어 1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누구나 공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여론 형성과 의사 결정의 민주화는 그 긍정적 효과다. 문해력을 깨친 대중은 그동안 보고 읽을 수만 있었지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사회적 의제를 꺼낼 수 있는 통로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의사소통 방식이 남다르고 공적 발언을 책임질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악플 문제 또한 그 일환에 있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연예인 자살 사건을 계기로 몇몇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에서 댓글 기능을 제거한 것은 우리 모두가 말할 기회를 가지게 된 데 비해 그럴 능력이나 자격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

 

솔직히 말해 이런 일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표적을 가리지 않는 적개심이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는 연예인에, 그것도 여성 연예인에 더 쉽게 혹평을 하는 한국 사회의 비겁한 이중 잣대도 문제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자기 자신을 공적 존재가 아니라 사적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발언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해진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이곳이 신상 노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버 공간이라면 악플과 같은 비사회성 문제가 터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아마도 별다른 조처가 뒤따르지 않는 이상 악플, 그리고 그 이상의 문제들은 언제든 반복될 것이다. 아직도 사이버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단체 채팅방에서 음담패설 주고 받는 것쯤은 친밀성의 표시라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악플을 다는 어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피해 당사자는 심리적 위축감과 고립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민주적, 공적 시민성 확립이 중요

 

악플, 나아가 사이버 폭력, 더 나아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뚫고 나갈 해법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법적 해결이라는 타율적 장치를 세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법률로써만 해결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와 같은 폭력의 양상과 행위자들을 특별히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폭력적 언행에 대한 자정 작용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조처와 상호 작용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대면적인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자신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사회성을 준수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규범이 통용될 수 있는 준자율적이고 준타율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참여가 가능한 공적 시민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법적 해결 이전에 규범적 해결, 그리고 그에 앞서 개인들의 윤리적 태도와 실천이 중요하다. 정보 인프라가 구축되고 이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능력만큼이나 책임 의식을 발휘할 새로운 시민성의 확립은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공간만의 독특한 사회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환경 때문에 문제화의 방식이 다원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으로 현실 세계의 문제들이 점차 개선되리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관계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성의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회적 규범이라는 문제의식을 다시금 벼려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강제적이든 자율적이든,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 김성윤 -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사회적인 것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이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중문화와 정보 문화의 사회적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청소년 하위문화를 다룬 「18세상」, 대중문화 비평집 「덕후감」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20년 2월호, 김성윤]


0 926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