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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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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새로운 호흡과 발걸음, 공동합의성

67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02

[레지오 영성] 새로운 호흡과 발걸음, 공동합의성

 

 

얼마 전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교황 선출 선거인 콘클라베의 생생함과 함께 교황님 별장에서 개혁과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베네딕도 교황님과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감동적인 만남과 동행을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 교회는 교황님의 소임이 생애 마지막 호흡까지 이어지는 종신직임에도 두 교황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두 교황님께서 함께 이루신 새로운 ‘공동합의성’(공동식별)의 시대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장면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이해, 시각, 비전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습관, 취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분이 서로에 대한 불편함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대화와 경청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순간들은 지금도 사진처럼 기억에 남겨져 있습니다. 주교직무에 대한 은퇴신청을 하러 가신 베르골리오 추기경님께서 베네딕도 교황님과 몇 날 며칠을 함께 보내시며, 교황직무을 내려놓고자 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던 모습, 베네딕도 교황님의 피아노 연주를 베르골리오 추기경님이 들으시던 장면, 은퇴하신 베네딕도 교황님께서 아무 관심 없었던 축구를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보시던 장면, 마지막에 탱고를 함께 추시던 장면들은 교회의 새로운 길이 되고 있는 ‘공동합의성’(공동식별)을 보여주는 예표처럼 다가왔습니다.

 

개혁과 보수를 대변하시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베네딕도 교황님께서 서로에 대한 큰 벽을 허물고 친구와 동반자가 되는 과정을 보며, 교회가 걸어가야 할 공동합의성의 길이 어떤 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느 순간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시며 동시에 외치셨던 말씀.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세상을 향해 움직여야 합니다. 이 움직임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경청’과 ‘식별’이며 새로운 ‘호흡’과 ‘발걸음’입니다.

 

 

열린 대화와 경청이 꽃피는 한 해가 되길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교회 전체와 교회 안의 모든 이가 주체로서 참여적이고 공동 책임을 갖는 교회’, ‘공동합의와 공동식별로 나아가는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2018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에서 나온 문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공동합의적 소명을 실현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합니다.

 

“공동합의적인 호흡과 발걸음은 우리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우리의 결정들을 고무하는 친교의 역동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지평 안에서만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사목을 혁신하여, 그것을 오늘의 세계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적합하게 할 수 있습니다.”(120항)

 

가톨릭교회가 평신도의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입니다. 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평신도는 가르침의 대상이었습니다. 역할과 지위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평신도와 성직자가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즉, 세례 받은 모든 신자는 같은 성령을 모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똑같은 존엄과 품위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백성’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오늘날 우리는 ‘공동합의성’ 실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동합의성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공동으로 경청하고 식별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성령 안에서 함께 걸으며 삶과 활동을 함께하는 ‘친교’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올 한 해는 ‘경청’이라는 새로운 호흡과 발걸음으로 내 앞에, 내 옆에 함께 있는 이들을 향해 다가서고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나와 다른 형제, 자매들이 갖고 있는 ‘놀라운’ 생각과 마음들을 새롭게 만나고,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과 열매가 커지는 2020년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언젠가 한 초등학생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겨울이 좋아요. 왜냐하면 겨울은 따뜻하거든요.” 처음엔 웃음이 났습니다. 역시 어린아이들의 엉뚱함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던 나를 그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며 겨울이 따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따스함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어요. 장갑 속이나 포근한 이불, 그리고  코트의 따뜻함, 그 느낌을 다른 때는 느낄 수 없잖아요. 여름은 더운 거지 따뜻하진 않아요.”

 

그 아이의 말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어른이 한 어린이와의 대화를 통해 상투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 행복의 역설적인 의미를 깨달은 것처럼, 열린 대화와 경청이 꽃피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3월호, 김민희 바오로 신부(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대전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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