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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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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성화와 한의학: 보이지 않는 기와 지압

50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8-14

[성화와 한의학] 보이지 않는 기와 지압

 

 

‘의심하는 토마스’를 주제로 한 그림이 많다. 그림을 보기 전에 토마스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보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토마스는 겐네사렛 호수의 어부 출신으로, 요한 복음에서는 그를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11,16. 20,24. 21,2)라고 일컫는다. 그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 ‘디디무스’(Didymus)인데, 이 말이 쌍둥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이를 직접 확인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을 때 대화를 나누었고(20,27-29 참조),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신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빵과 고기도 먹었던 토마스는(21,1-13 참조) 곳곳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함께한 증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토마스의 상징물은 성모님의 허리띠이다. 성모님께서 승천하신 뒤 그에게 발현하시어 생전에 두르시던 허리띠를 그에게 주셨다고 하는데, 그리스 아토스산의 바토페디 수도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허리띠가 바로 이 유물이라고 한다.

 

초상화 속의 그는 창이나 칼을 들고 있거나, 곱자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왜 창이나 칼을 들고 있을까? 성령 강림 이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전교에 나선 그는 고대 이란의 왕국이었던 파르티아를 거쳐 인도에서 전교하다가 창과 칼에 난자를 당해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기 때문이다. 루벤스의 그림에는 인도의 이교 광신도들이 창칼과 돌멩이를 들어 그를 쳐 죽이려는 장면이 있다.

 

한편 그는 왜 곱자를 들고 있을까? 곱자는 나무나 쇠를 이용하여 ‘ㄱ’ 자 모양으로 만든 자이다. 먹통과 함께 목공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인데, 인도 군다포러스 왕의 궁전을 지을 당시 토마스가 이 일에 목수로 참여했다는 전승이 있다.

 

 

토마스의 의심과 믿음

 

‘의심하는 토마스’를 주제로 한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토마스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담고 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20,27).

 

벨기에 플랑드르의 화가 마르텐 데 보스의 ‘성 토마스의 의심’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다. 보스의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어둠 속에서 예수님의 벗은 상체가 강하게 빛난다. 그래서 그림의 어두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밝은 곳을 따라 우리 시선은 예수님의 상처, 그 신성한곳으로 집중된다.

 

옷을 보자. 예수님의 붉은 옷이 수난의 상징이라면 토마스의 짙은 녹색 옷은 희망을 상징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사선으로 두 제자의 붉은 옷은 예수님을, 토마스 곁에 서 있는 제자의 노란 옷은 토마스를 돋보이게 하면서 긴장과 두려움의 순간을 평온한 분위기로 반전시키고 있다.

 

손을 보자. 제자들은 상처를 가리키기도 하고, 어쩐 일이냐는 듯 놀란 손짓이다. 성모님께서는 두 손을 모으시고, 예수님께서는 한 손을 펼쳐 못에 찔린 상처를 보이시면서 다른 손으로는 토마스의 팔을 잡아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시켜 주신다. 토마스는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그 상처를 만지면서 다른 손으로 놀랍고 두렵다는 손짓을 하고 있다.

 

렘브란트가 두 팔을 벌리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뒷걸음치는 놀란 모습의 토마스를 그렸다면, 보스의 그림 속 토마스는 손짓으로 그 놀라움을 나타낸다. 더구나 토마스는 처음부터 무릎을 꿇고 있다. 불신하면서도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서려 있었음을 드러낸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 순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 못 자국과 지압

 

보스의 그림에는 성모님과 열한 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빙 둘러싸고 있다. 한데 제자들의 시선이 제각각이다. 두리번거리며 서로를 보거나 아예 엉뚱한 곳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비로소 확신하며 놀랐기 때문이다. 보고서야 비로소 믿음이 생긴 순간을 이처럼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몸에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면서 작용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氣)라는 것이다. 기는 끊임없이 흐른다. 기가 흐르는 통로를 경락이라 한다. 이 통로에서 생체 반응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특정 부위가 경혈이다. 이 경혈에 자극을 주어 기의 불균형을 조화시키는 치료법이 침 또는 지압이다.

 

경혈 가운데 ‘노궁’(勞宮)과 ‘용천’(湧泉)이라는 경혈은 가정에서도 할 수 있는 유효한 지압 경혈이다. 노궁은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 부위와 거의 비슷하게 둘째와 셋째 손가락이 손바닥에 닿는 사이에 있다. 육체적 피로와 노심초사한 정신적 피로를 치료해 준다고 하여 ‘노궁’이다. 입안이 헐고, 잘 놀라며, 가슴이 조여 오고, 소화가 잘 안 될 때 지압하면 좋다.

 

용천은 예수님의 발에 난 못 자국 부위와 거의 비슷하게 발바닥 앞쪽 ‘인’(人)자 주름의 오목한 곳에 있다. 물이 솟아나는 샘과 같고, 문란해진 체내 수분 대사를 치료해 준다고 하여 ‘용천’이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면서 아프고, 마른기침이 나며, 어깨나 등이 굳고 아플 때 치료하는 곳으로 좋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를 ‘커대버’(cadaver, 시신)의 상처처럼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죽음과 부활을 현시적 차원에서 묘사했다. 그 반면 보스는 이 상처를 영광의 상처로 표현함으로써 부활을 영생 차원에서 묘사하였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0,29)고 하신 말씀을 커대버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기’도 마찬가지다.

 

* 신재용 프란치스코 - 한의사. 해성한의원 원장으로, 의료 봉사 단체 ‘동의난달’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 ‘라디오 동의보감’을 5년 동안 진행하였고, 「TV 동의보감」, 「알기 쉬운 한의학」, 「성경과 의학의 만남」 등 한의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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