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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그래도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173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5-03

[알아볼까요] 그래도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희망의 표징은 비록 사회를 지키려는 수단이라 여기더라도 사형을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중대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사형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형은 불가침성의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비로운 심판에 반하는 것이며 죄에 대한 공정한 결말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희생자에 대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 복수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백한 이들 뿐만 아니라 죄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범죄자도 하느님의 선물인 생명의 불가침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6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사형폐지총회 영상메세지 중)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에도 참혹한 범죄들은 뉴스를 장식하고 우리 사회를 절망과 분노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명을 잃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아픔과 슬픔을 주고도 반성도 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마주 할 때면 20년 가까이 인권활동가로 살아온 필자도 쉽게 울분을 가라앉힐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참혹한 범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고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이런 범죄로부터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엄격한 법의 심판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사형 집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들이 계속 발생한다는 주장은 사실 그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참혹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형벌을 강화하자고 하거나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교황님 말씀처럼 오히려 사회 전반에 폭력적인 문화를 확산시키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를 만들게 될 뿐이니까요.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역시 용인되어서는 안 돼

 

형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참혹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점검하는 일이며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와 장치를 만드는 일입니다. 제 구실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위한 대책도 없고 피해자들의 사회복귀와 안정된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강한 형벌만을 주장하는 것은 범죄의 사회적 책임을 잊고 무책임하게 효과도 없는 대책을 여론에 호응을 얻기 위해 떠드는 것 일뿐입니다. 더불어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며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주장을 여과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도,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약 성서를 읽다보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사건입니다. 카인과 아벨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인데 그중 형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죽입니다. 그 사실을 당연히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물으셔도 카인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광야로 가서 고통 속에 살게 하신 벌이 너무 무겁다며 항변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겁을 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주시어 다른 사람들에게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하시며 카인을 죽이는 자는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공표하십니다.

 

이 장면을 보고 하느님께서 피해자인 아벨의 입장은 살피지 않으시고 가해자인 카인만을 위한다며 비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평생을 사막과 광야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야하는 무거운 벌을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죄인을 죽이기보다는 바로잡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는 살인이 또 다른 살인 행위를 통하여 처벌받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더 큰 폭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운 정의라는 역설적인 신비(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중)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들이 지키려는 것도 단순히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 60여명의 생명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국가라는 존재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범죄를 당한 이들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고 양심의 울림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게 하는 일은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죄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역시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폐지국’이 되어야

 

대한민국은 이제 ‘실질적 사형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폐지국’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사형처럼 강력한 복수의 방법으로 행해져서는 안 됩니다. 참혹한 범죄에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풀어나가며 범죄 발생을 줄여 진정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범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범사회적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으로 경제적, 심리적 소외감 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형제의 완전한 폐지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사형이 집행 된 지 22년이 넘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지난 2007년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지만 사형집행 재개의 위협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생명과 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종교·인권·시민 단체들의 노력으로 사형집행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오는 6월 새롭게 시작되는 21대 국회에서는 입법을 통해 사형제을 완전히 폐지하고 우리 사회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시기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져도, 그래도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존엄성은 상실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공동체를 다시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거나 죽임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가해 당사자에 대한 회개의 가능성도 결코 포기되어선 안 됩니다. 어떠한 생명도 죽이지 않고 모든 사회의 선을 얻을 수 있도록 각자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입니다. 저는 기도로 여러분과 함께 동행 하겠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9년 벨기에 브뤼셀 세계사형폐지총회 영상메시지 중)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김덕진 대건안드레아(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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