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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0년 7월 5일 (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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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67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0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나를 가르쳐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둘째 날에는 새벽에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여사의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이란 글의 일부입니다.

 

일생 동안 농아와 맹인을 돕고,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헬렌 켈러. 그러나 그녀는 불행하게도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러나 6세 되던 해에 평생의 교사인 앤 맨스필드 설리번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설리번 선생님은 1887년 3월2일부터 그녀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수화 알파벳을 쓰며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설리번의 지속적인 지도로 헬렌 켈러는 점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여자대학교였던 레드클리프 대학교 입학을 허가받았고 1904년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첫번째 시각·청각 장애인으로 대학에 입학, 졸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특히 시각 및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활동, 강연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무엇이든지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어떻게든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장애와 어려움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공한 현대의 위인입니다.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전 창세기 공부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수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모든 연수생들은 일 년 가까이 그룹 성서 공부를 마치고 연수에 참여했기 때문에 수강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습니다. 강사를 바라보는 연수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너무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앞쪽에 앉은 한 중년의 형제는 자꾸 창밖만 쳐다보았고, 강의하는 데 무척 분심이 들게 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도 그 형제는 여전히 창밖만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자꾸 그 형제가 마음에 걸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 복도에서 그 형제를 가까이에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형제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제 강의를 더 잘 들으려고 자신의 귀를 저를 향해 돌리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내가 오히려 그 형제를 잘 보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잠시나마 그 형제에게 안 좋은 감정이 들었던 것에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형제는 다른 맹인들과 함께 점자로 1년 동안 봉사자가 읽어 주는 성서 말씀을 들으며 창세기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신부님, 저는 나이가 들어,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성서를 읽으면 그전에 눈이 성했을 때보다 요즘에 오히려 더 많이 보고 느낍니다.” 그분의 말씀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큰 울림으로 메아리쳤습니다.

 

우리는 사실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그리고 걷고 뛰고 먹는 일상생활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고, 걷고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입니까.

 

 

눈은 마음의 등불, 마음을 잘 닦아야 잘 볼 수 있어

 

마르코 복음에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이 등장합니다(마르 10,46-52 참조).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리코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용감하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처지였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눈이 먼 소경입니다. 육체적으로 결함이 없더라도 영적인 면에서는 소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눈뜬 소경’이란 말처럼, 시력이 성하다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욕심이나 탐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마음의 창을 믿음으로 닦아야 합니다. 사랑의 눈, 순결한 마음의 눈만이 하느님과 참다운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고 길을 헤매는 이유는 얼마나 눈이 멀어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만약에 우리 자신이 세상과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깨닫고 이해한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욕심이나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습니다. 마음을 잘 닦아야 잘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오히려 눈을 감아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항상 다시 바르게 볼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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