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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서응권 요한 · 한용호 베네딕토 · 손빅토리아

189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1-05

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132위’ 약전


서응권 요한 · 한용호 베네딕토 · 손빅토리아

 

 

서응권(요한, 1827~1866)

 

서응권은 경상도 김해군 상북면 장방리의 노루목(현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대항)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뒤 윤안나를 아내로 맞아 여섯 자녀를 두었다. 그는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포교들이 노루목 마을을 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녀들을 두고 아내와 함께 마을 초분 속에 숨어지내다 3일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는 뜻하지 않은 참극이 벌어져 있었다. 6자녀 가운데 위로 셋은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위험을 느끼고 피신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머지 어린 자식 셋이 집에서 무참히 살해된 것이었다.

 

부부는 “우리 대신 이 어린 것들이 모두 죽고 말았는데 이곳에서 어찌 농사를 짓고 살아가겠으며, 또 우리만 살아서 무엇하리오? 관가에 자수해 신앙을 증거함만 같지 못하다”고 결심하고 관아로 가서 자수했다.

 

서응권과 그의 아내 안나는 배교를 강요받으며 갖은 형벌을 당하다 순교했다. 이들 부부의 시신은 2개월 뒤에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한용호(베네딕토, 1821~1868)

 

한용호는 서울 남촌의 양반 출신으로 인자한 성품에 단아한 기품을 갖춰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가리켜 옥(玉) 같은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처음 천주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860년 무렵이었다. 그는 천주교 신앙이 참된 진리임을 알았지만, 세속의 체면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은 채 교회 서적만 부지런히 읽고 필사해 보관했다. 또 교리를 강론하는 자리에 자주 참여했다. 그러던 중 용인에 사는 친척 한성윤이 입교를 권하자 그는 정의배(마르코) 회장에게 교리를 배운 후 베르뇌 주교에게 1865년 6월 2일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한용호는 세례를 받은 후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며 기도생활에 전념했다. 그는 교우들에게 교리를 일깨워 주었고, 교회 서적을 부지런히 보급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한동안 여러 곳으로 피신해 다녔다. 그러다 1868년 음력 4월에 체포돼 좌포도청으로 압송됐다. 그는 문초와 형벌을 받자 두려워 천주교와 베르뇌 주교를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하고,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배교하는 것보다 빨리 죽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신앙을 증언했다. 이후 그는 옥에 갇혀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교우들을 권면하면서 순교를 준비하였다. 또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면 마치 부모님의 부름에 대답하는 것처럼 반가운 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한용호는 1868년 6월 9일 형벌을 받던 도중 순교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손빅토리아(1838~1868)

 

손빅토리아는 경기도 광주의 소뫼(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 살던 손성직(베드로)의 맏딸로 1838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충청도 내포에 살던 정치도(요한)와 혼인한 후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시부모와 시숙부 정분옥(베드로)와 함께 송도(현 개성) 두문동 교우촌으로 이주했다.

 

손빅토리아의 가족이 두문동에 정착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 병인박해가 시작돼 얼마 지나지 않아 송도 포교들이 들이닥쳤다. 이때 이름이 알려졌던 남편 정치도와 시부 요셉, 시숙부 정분옥, 시어머니 아가타가 체포됐다. 하지만 포교들은 어린 자식이 딸린 손빅토리아는 체포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울면서 “나도 천주학을 하니 잡아가시오”라고 소리쳤지만, 포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손빅토리아는 남편 정치도를 비롯해 체포된 시댁 가족 모두가 교수형으로 순교하자 두문동 집에 친정 식구들을 불러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중 1868년 5월 16일 장단(현 황해북도 장풍군) 포교들이 들이닥쳐 그를 비롯해 그의 부친 베드로와 동생 비르지타, 바울로, 교우 오 마리아 등을 체포했다. 이후 이들은 장단을 압송된 후 그해 6월 20일 순교했다. 당시 손빅토리아는 30세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5일, 정리=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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