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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0년 1월 21일 (화)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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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동유럽 신앙 역사 순례: 폴란드인이 사랑하는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185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15

[동유럽 신앙 역사를 순례하다] (1) 폴란드인이 사랑하는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굴곡진 천 년의 가톨릭 역사… ‘검은 성모’가 지켜온 폴란드

 

 

19~20세기 유럽은 ‘진영의 전쟁터’이자, 1ㆍ2차 세계대전이 빚은 인류사의 참혹한 현장이었다. 19세기 소련 발(發) 공산주의 노선과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자유 민주주의 진영 간 반목이 거듭된 흐름 속에 소련과 맞닿은 동유럽권 국가들은 20세기 중 절반의 세월을 공산주의 체제 속에 살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주의자들은 침략과 약탈, 종교 탄압으로 평온하던 동유럽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오랜 가톨릭 신앙의 터전에 억압의 사슬을 둘러쳤다. 체제에 반하는 주교와 사제, 수도자들을 감금해 처형하고, 학살도 일삼았다. 유서 깊은 수도원과 성당들은 파괴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 자비의 손길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으니. 어떠한 탄압도 동유럽인들이 간직해온 오랜 신심을 앗아갈 순 없었다. 그리고 1991년 소련 몰락을 전후로 자본주의의 물결과 함께 신앙이 자유의 날개를 달고 다시금 고개를 든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관으로 9월 21~29일 전쟁과 탄압의 고통 속에도 오랜 신앙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순례를 4회에 걸쳐 소개한다.

 

 

꾸준히 성장하는 교회, 폴란드

 

우리와도 친숙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모국 폴란드는 1000년 넘는 가톨릭 신앙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 966년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인 폴란드는 2016년 ‘자비의 해’를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방문과 세계청년대회(WYD) 개최, 폴란드 교회 설정 1050주년 기념으로 신앙의 열기를 다시금 북돋기도 했다.

 

오늘날 폴란드는 인구의 약 3700만 명 중 97%가 가톨릭 신자이며, 45개 교구에 주교 160여 명, 사제 약 3만 명, 본당이 1만 곳에 이른다.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드물게 굳건한 신심의 힘으로 성장하는 교회다. 실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라면 많은 이가 성당에서 한 ‘첫영성체’를 꼽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몸을 처음 받아 모시는 날이면 가족과 친인척, 동네 사람 모두가 아이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따뜻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미사 때면 유모차를 끌고 성당을 찾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날 유럽 교회 위기론 속에도 폴란드가 신앙의 동력을 잃지 않은 중심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있다. 폴란드가 낳은 보편 교회의 영적 지도자요 자국 민주화의 상징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성상도 모든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예수님 환시와 자비의 신심 기도를 전파한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주님 희망을 전하다 동료 죄수를 대신해 자원하여 죽음을 택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등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 현대 성인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폴란드 최대 성지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 떨어진 소도시 쳉스토호바. 도시 한가운데 ‘빛의 언덕’으로 불리는 야스나고라에는 국민 모두가 공경하는 ‘검은 성모 성화’가 모셔져 있다. 4세기 예루살렘에서 헝가리 등지를 거쳐 이곳 폴란드에 모셔졌다. 1382년 헝가리 출신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사들이 성화를 보호하고자 수도원을 세운 이곳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성지’는 폴란드 최대 성지로, 매년 전 세계에서 순례객 500만 명이 다녀가는 곳이다.

 

9월 23일 6시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기 전 성화가 있는 수도회 성당으로 향했다. 동트는 새벽 수도원이 너무도 고요해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괜한 기우였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신자가 성당을 가득 메운 것은 매일 이 시간이면 팡파르 소리와 함께 검은 성모님을 덮은 금빛 장막의 제막식이 열리기 때문. 과거엔 전문 연주가들이 검은 성모님을 맞는 연주를 직접 선보였단다. 곧이어 미사가 봉헌되는 이 새벽이야말로 폴란드인들에겐 검은 성모님과 함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이다.

 

폴란드인들의 검은 성모님을 향한 공경은 각별하다. 1655년 스웨덴 침략 때 수도원 수도자들은 검은 성모상 앞에 기도를 바쳤고, 수도원은 피해를 면했다. 이보다 앞서 1430년 종교 개혁을 주창했던 얀 후스(1369~1415)의 추종자들이 수도원을 습격해 성물을 약탈해 갈 때 검은 성모 성화를 실은 말수레가 꿈쩍도 하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다. 이때 후스파 일당이 성화를 내동댕이친 뒤 성모님 얼굴에 칼집을 낸 두 줄의 상처는 지금도 성화에 그대로 남아 있다.

 

폴란드인들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주변 열강들의 침략으로 1795년부터 123년간 폴란드가 지도상에 사라지는 최악의 역사를 견뎌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쳉스토호바가 파괴를 면한 것도 검은 성모님의 보호의 힘으로 여긴다.

 

검은 성모는 폴란드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모후요 호국의 상징이자 민중의 벗이다. 모든 고통에서 민중을 보호하느라 얼굴의 상처마저 빛나는 ‘폴란드의 어머니’이다. 검은 성모 주변에는 고통받던 이들이 봉헌한 목발과 묵주, 성물이 사방 가득 걸려 있다. 검은 성모 성화 주변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1년 피격 당시 허리에 둘렀던 피 묻은 파시아와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봉헌한 황금 장미가 장식돼 있다.

 

새벽 첫 미사 후 바로 다음 미사가 이어졌다. 신자들은 줄지어 검은 성모 성화 주변에 조성된 좁은 돌 바닥을 무릎으로 걸으며 기도를 바쳤다. 얼마나 많은 이가 무릎 기도를 바쳤는지, 단단한 돌 바닥이 두 줄로 깊게 팬 자국이 선명하다. 성화 속 검은 성모님이 ‘고통받는 모든 이들은 내게 오라’ 하고 내려다보시는 듯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13일, 폴란드(쳉스토호바)=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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