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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성화와 한의학: 얼굴 보고 건강 알기

50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9-22

[성화와 한의학] 얼굴 보고 건강 알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시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순간을 그린 성화가 많다. 그 가운데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 ‘그리스도의 변모’를 보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그림의 장소는 산 정상이다. 어떤 산일까? 성경에선 “높은 산”(마태 17,1)이라 말한다.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있는 ‘타보르 산’으로 추측한다. ‘타보르’(Tabor)는 히브리어로 ‘높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산은 작은 마을의 동산 같다. 멀리 다른 산들마저 다 고만고만하게 그려져 있다. 변모하신 장소치고는 웅장하지 않지만, 이를 통해 예수님의 변모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듯 정겹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때는 이른 아침이다. 하늘은 벌써 밝아 구름이 다양한 색조로 빛나고, 온 마을이 이미 깨어 있다. 농부가 소를 몰며 일하러 가고, 동네 어귀에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변모하신 상황치고는 ‘신성’의 장엄함이 없이 평범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이 더욱 살갑고 정겹게 안겨 온다.

 

그림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신다. 황금빛 후광이 빛을 발하고, 거룩하게 변모하신 모습으로 서 계신다. 바로 천상의 ‘본성’을 드러내신 순간이다.

 

예수님 왼쪽에 모세가, 오른쪽에 엘리야가 서 있다. 모두 경이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이와 같은 모습으로 계시리라는, 그 평범한 위로가 우리 안에 정겹고 부드럽게 녹아든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림 아래쪽에는 세 제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왼쪽부터 살펴보자. 야고보는 바위 절벽 아래로 금방이라도 내뺄 듯 엉거주춤한 자세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 요한은 아예 엉덩방아를 찧고 땅에 주저앉아 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실 때 데리고 가신 제자들이다. 장차 큰일을 감당해야 할, 특별히 은총을 받은 이들이다. 그런데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빠진 이들은 이른 아침에서야 깨어나 광채에 휩싸인 주님을 보고 그만 압도당한 채 겁에 질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잠시 그림 밖으로 나와 성경을 보자.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 모세, 엘리야와 함께 이 영광의 황홀한 빛 속에서 같이 살자고 한다. 변모하신 예수님께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1)라는 말씀을 나누시고 난 바로 뒤에 말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구름이 홀연히 일더니 제자들을 덮쳤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하는 소리가 울려온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시는 말씀이다.

 

이로써 이들은 아들의 길에 함께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아들의 길은 어떤 길인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의 길이다. 고난과 환란과 핍박의 길, 죽음을 향한 길,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을 함께 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제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조반니 벨리니는 이 그림에서 예수님의 좌우로 나무 두 그루를 그려 넣으며, 오른쪽은 풍성하게, 왼쪽은 시들어 마르게 표현했다. 우리가 이 부르심대로 이 길에 함께한다면 풍성한 평화를 누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시들고 말라 버릴 것이라는 상징적 묘사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기막힌 구성인가! 예수님과 함께 모세, 엘리야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을 그린 라파엘로의 그림이 유명하지만, 필자가 조반니 벨리니의 이 그림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색과 택과 신

 

예수님께서 변모하시는 순간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마태 17,2)눈부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도 얼굴에 광채를 띨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한의학에서는 겉으로 나타나는 색채, 그 색의 광채, 그리고 겉으로 나타난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 ‘색’(色), ‘택’(澤), ‘신’(神)을 관찰하여 건강 여부를 가늠한다.

 

색도 관찰하고, 그 색이 밝고 윤택하여 광채가 나는지, 어둡고 메말라 광채를 잃었는지를 살펴본다. 또 신성한 빛이 보이는지, 기혈이 성하거나 쇠하지는 않은지, 또는 앓고 있는 질병의 경중과, 그 질병이 나은 뒤의 경과가 어떠한지도 알아낸다.

 

병이 깊은데도 신성한 빛이 보이는 것은 ‘신기’가 있는 것이므로 예후가 양호하겠지만 가벼운 병인데도 신성의 빛이 좋지 않으면 신기를 이미 잃은 것이므로 예후가 불량하다. 색은 좋은데 광채가 없거나 신기가 없으면 죽고, 색은 없어도 신기가 있어 은은히 비추고 있으면 산다.

 

그러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는 것은 좋지만, 눈동자 위쪽에서 안광이 쏘는 듯 내비치는 것은 정신 신경계에 이상이 있다는 징조다.

 

눈이 크고 안광이 쏘는 듯하면 체액 대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는 질환이나, 하반신 질환에 약하다는 징조다. 갑상선 기능 항진 때도 눈빛이 유난히 밝게 광채가 난다. 이처럼 모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시던 도중에 변모하셨듯이 진심으로 기도할 때나 진정으로 사랑할 때, 진지하게 소통할 때, 지나치지 않고 절제하며 살아갈 때 우리 얼굴도 기쁨과 행복, 평화의 얼굴로 변모할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색과 택과 신기로 빛날 것이다.

 

* 신재용 프란치스코 - 한의사. 해성한의원 원장으로, 의료 봉사 단체 ‘동의난달’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 ‘라디오 동의보감’을 5년 동안 진행하였고, 「TV 동의보감」, 「알기 쉬운 한의학」, 「성경과 의학의 만남」 등 한의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b/bellini/giovanni/1480-89/100tra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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