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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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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4: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 증진으로 가는 길

46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6-25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4.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 증진으로 가는 길 (상)


목자와 양떼가 섬김의 삶 살 때 성소의 꿈도 커진다

 

 

사제와 수도자 현황.

 

 

‘하느님이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려고 부름. 특히 성직 또는 수도생활을 하도록 부르는 것을 이른다.’ 국어사전에 나온 ‘성소(聖召)’의 사전적 의미다.

 

유럽 교회는 물론 전 세계 교회의 많은 사목자가 한국 교회에 대한 소감으로 “매우 역동적인 교회”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지속해서 성장하는 우리나라 교회에 대한 부러운 시선이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한국 교회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또 하나는 ‘성소의 풍요로움’이다. 이는 교세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30년 전 1452명(1987년 말 기준)이던 한국 교회의 사제 수는 1997년 2679명으로 증가하고, 2007년에는 4148명으로 늘어났다. 다시 10년 뒤인 2017년 말에는 5360명으로 늘었다. 10년 주기로 1000명 이상의 젊은이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과 희생의 길, 희망의 길을 걷게 됐다는 방증이다. 수도자 수도 지난 30년간 5154명(1987년)에서 1만 1736명(2017년)으로 증가했다.

 

사제 수도자 수로는 한국 교회는 분명 풍요롭다. 2회에 걸쳐 성소를 주제로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의 변화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꾸준히 사제를 배출하는 서울대교구 본당 성소후원회를 탐방한다.

 

 

한국 교회의 풍요로운 성소 비결

 

한국 천주교회에는 자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사제가 많다. 한국의 첫 사제이자 피의 순교자인 성 김대건(안드레아, 1821~1846) 신부를 비롯해 땀의 순교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 힘없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김수환(스테파노, 1922~2009) 추기경,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랑의 씨앗을 뿌린 이태석(요한, 1962~2010) 신부…. 이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사제들이다. 

 

234년이란 짧은 교회 역사에도, 한국 교회에 존경할 만한 사제가 많이 나고 풍요로운 성소를 가진 교회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박해와 순교로 점철된 한국 천주교회 역사도 큰 몫을 차지한다. 박해 시절 신자들은 미사 영성체를 평생의 소원으로 여겼다. 그만큼 사제가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신자들은 하늘에서 온 천사처럼 사제를 보호하고 떠받드는 분위기였다.

 

이는 19세기 후반 종교의 자유가 생겨나고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신자들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사제를 공경하는 마음과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제는 존경받고 대접받는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 하지만 이는 성소 계발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긴 했지만, 성소의 위기를 불어온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사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소가 풍요로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성장과 함께 1970~1980년대 사제들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 24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성탄 자정 미사 때 TV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했다. 1980년대에는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인 신군부에 맞섰고,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사제들이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 인권 수호와 민주화에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교회의 양적 성장과 함께 성소자도 늘게 됐다.

 

2018년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에서 수품자들이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현시대가 바라는 사제상은?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사제와 수도자가 전보다 많아졌음에도 교회와 사회의 모습은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교회가 대형화하고 물질적인 가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종교에 대한 갈망은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 박해 시절 신앙의 못자리이자 성소의 못자리였던 교우촌이 사라지면서 요즘은 신자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아울러 무엇보다 사제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크다.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신부는 “사제는 물질보다는 가난을 살아야 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일찍 죽는 것까지도 감수해야만 한다”면서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사제, 꽃이 되기보다는 썩어서 묻히는 밀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교회사연구소장을 지낸 김진소(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사제는 ‘봉사하는 사람’이다. 신자들이 사제를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처럼 신자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베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접받는 사제의 길이 탐나서 사제가 된 이가 있다면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미래는 그러한 사제 때문에 어두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6월 24일, 이힘 기자]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4.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 증진으로 가는 길 (하)


성소 증진… 가정 본당 교구의 ‘삼위일체적 관심’ 필요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선조들은 신앙인의 발자취가 주위 이웃들은 물론 후손들에게도 이정표가 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예전엔 묵주기도를 ‘묵주신공(珠神功)’으로 부를 정도로 기도를 개인의 영적 수련시간으로 간주했다. 하느님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인 ‘기도’를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짧은 시간 많은 순교자를 낸 강한 믿음을 지닌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교회 역사가들과 사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앙 선조가 보여준 이러한 믿음과 행실은 자연스레 ‘성소 증진’이란 결실을 보았다.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신부 인터뷰를 통해 성소 증진을 위한 교회의 노력과 반성을 살핀다. 또한, 꾸준히 사제를 배출해온 서울대교구 둔촌동본당(주임 이기헌 신부) 성소후원회를 탐방한다.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신부

 

“성소 증진을 위해서는 가정과 본당, 교구의 ‘삼위일체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6월 14일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실에서 만난 조재형 신부는 “하느님께 맏배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유능하고 신심 좋은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가정이 많아져야 한다. 본당과 교구가 함께 노력할 때 성소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30년간 한국 천주교회의 사제와 수도자 수는 크게 늘었다. 1987년 말 기준 사제 수는 1452명에서 2017년 말 5360명으로 약 3.7배 늘었고, 수도자 수는 같은 기간 5154명에서 1만 1736명으로 2.27배 증가했다. 가톨릭대(서울)와 대구ㆍ광주가톨릭대 등 4개뿐이던 신학대학도 7개교로 늘었다.

 

“예전엔 교우촌에서 성소자가 많이 났습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님을 비롯해 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님,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님도 교우촌 출신이시지요. 교우촌에서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성소의 비결입니다. 저 역시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여동생도 수도자입니다.”

 

조 신부는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며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선 성소자 개인의 인성과 지성, 영성을 골고루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 증대를 위해서는 제도와 열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30년 전에는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열정은 가득했지요. 지금은 제도가 정립됐지만, 열정은 예전만 못합니다. 정하상(바오로) 성인은 사제 영입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고,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순교를 각오하고 조선에 입국했지요. 교회는 제도와 열정이 함께해야 합니다. 조직화한 양성 이전에 학생들의 마음을 여는 관심과 사랑이 함께하는 양성이어야 합니다.”

 

조 신부는 이어 “교황청에서 사제양성 지침을 새롭게 만들었고, 한국 교회도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다시 만들고 있다”며 “변화된 양성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동화되는 것’이다. 인성ㆍ지성ㆍ영성ㆍ사목이 조화를 이루는 틀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성소국장으로 부임한 조 신부는 부임 직후 성체성사가 성소의 중심이 되도록 하고자 예신(예비신학생) 모임 때 미사를 봉헌하도록 했다. 또한, 매체를 활용한 성소자 발굴에도 나섰다. 성경의 부르심에 대한 주제를 바탕으로 예신 모임 교재를 발간하는 한편, 2015년부터 2년간 가톨릭평화방송(cpbc) TV와 함께 ‘다큐멘터리 사제’를 제작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선 씨뿌리는 이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지요. 본당이 ‘밭’입니다. 주임ㆍ보좌 신부님들이 성소자들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교구는 사제가 되도록 돕지만, 사제 성소를 키우는 것은 본당과 가정입니다. 사제들은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을 다시금 기억하고 그러한 사제가 되도록 노력하길 희망합니다.”

 

 

본당 출신 사제 부모도 인정한 성소후원회 - 서울대교구 둔촌동본당, 단원 150여 명 적극적 활동으로 신학생 증가

 

서울대교구 둔촌동본당 성소후원회원들이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과 예비성소자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서울대교구 둔촌동본당의 신학생 수는 모두 11명.(6월 21일 현재) 서울대교구 소속 신학생이 8명, 나머지는 한국외방선교회 소속이다. 둔촌동본당은 서울대교구 230여 개 본당 중에서 신학생이 많은 본당 중 하나다. 교구 신학생 수로만 보면 양천본당(10명)에 이어 두 번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학생 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둔촌동본당은 뚝심 있게 성소자를 배출하는 ‘성소 못자리’임이 틀림없다.

 

둔촌동본당 성소후원회는 2009년 대림시기에 재창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당 출신 사제 부모들이 “성소후원회는 꼭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 덕분이다. 성소후원회가 없었을 때는 본당 사목회가 성소후원회의 역할과 일을 대신했다. 둔촌동본당 성소후원회는 140명의 단원과 15명의 행동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성소후원회와 다른 점은 해외선교 사제 양성과 지원에 아주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성소후원회 정의영(프란치스카 로마나) 회장은 “우리 본당 출신 양금주(토마스, 멕시코 선교) 신부님이 1994년 한국외방선교회 사제로 서품되면서부터 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해외선교 사제 양성에 관심이 높아졌다”며 “지금도 한국외방선교회 신학생이 많은 것은 이러한 영향 덕분”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은 본당 성소 계발의 또 다른 비결로 사목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열정’을 꼽는다. 성소자 발굴과 지원에 대한 본당 주임과 보좌 신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은 청년회와 주일학교 교사부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이는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성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영희(체칠리아) 전 성소후원회장은 “본당에 신학생 숫자가 많다 보니 방학 때마다 열리는 캠프 등에서 보좌신부님과 학사님, 초ㆍ중ㆍ고 주일 학생들의 만남과 어울림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며 “이러한 만남 덕분에 청소년들도 자연스럽게 성소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겸손한 사제

성사를 성실하게 집전하는 사제

강론 준비를 잘하는 사제

말을 정중하게 하는 사제

어른들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제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7월 1일,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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