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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0년 6월 3일 (수)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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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최용운 암브로시오 · 김마르티노

189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09

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132위’ 약전


최용운 암브로시오 · 김마르티노

 

 

최용운(암브로시오, 1836~1868)

 

최용운은 1836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속 학문을 배우던 중 우연히 천주교 교리를 접한 후 신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살던 보은 멍에목 교우촌(현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요한에게 교리를 배워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했다.

 

최용운은 입교 후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굳은 신심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었다. 그 결과 그는 1864년 멍에목 교우촌을 방문한 한 선교사로부터 그곳 회장으로 임명됐다.

 

최용운은 이때부터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교우촌 신자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멍에목에서 가까운 상주 장재동(현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장자동)으로 피신해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박해는 더욱 거세져 1868년 서울에서 파견된 포졸들에 의해 멍에목 교우촌이 발각됐다. 멍에목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있던 여요한과 교우들을 체포했다. 그런 다음 여요한을 앞세워 최용운 회장이 살고 있던 상주 장재동으로 몰려왔다.

 

체포된 최용운과 여요한 등은 보은 지역을 관할하던 청주 진영으로 압송됐다. 이때 최용운은 진영 옥에 갇혀 있으면서 관장 앞으로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교리 스승인 여요한이 신앙을 되찾아 순교에 이를 수 있도록 열심히 권면하기까지 했다.

 

최용운은 1868년 4월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김마르티노(1805~1868)

 

김마르티노는 충청도 연풍 출신으로 일찍이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의 집안은 아들 마태오와 손자 마티아까지 3대가 모두 입교한 성가정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김마르티노 가족은 다행히 박해자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으나 2년 뒤인 1868년에는 그의 가족에게도 박해가 몰아닥쳤다. 이때 그의 손자 마티아가 가장 먼저 체포됐고,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마태오마저 순교를 결심하고 관가에 자수했다.

 

아들 김마태오는 집을 떠나기 전에 “제가 관가에 들어가면 반드시 포졸들이 아버님도 체포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님도 제 뒤를 따르셨으면 합니다”라고 김마르티노에게 청했다. 그러자 김마르티노는 “오냐. 너나 관가에 가서도 마음을 변치 않도록 해라. 나는 이미 예순이 넘은 데다가 앉은뱅이니,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좋은 때를 놓치겠느냐”라고 대답하면서 순교 의지를 확인해 주었다.

 

김마태오는 충주 진영에 자수한 후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채 아들 마티아와 함께 투옥됐다. 이때 그는 아들에게 “네가 나가야만 남은 식구들을 돌보고, 그들이 영혼을 구하는 데 힘쓰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니 내 생각은 하지 말고 나가도록 해라”고 당부하면서 옷을 벗어 주려 했다. 그러나 쇠사슬 때문에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마태오가 잠깐 기도를 하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려 옷을 벗어 줄 수가 있었다.

 

김마르티노는 아들이 자수하러 간 뒤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진영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태연하게 웃으면서 그들이 가져온 들것에 실려 압송됐다. 김마르티노가 잡혀 오자 진영 관장은 그의 손자 마티아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김마르티노와 아들 마태오는 함께 옥에 갇혀 지내면서 굳건히 신앙을 고백했다. 그뿐 아니라 함께 갇혀 있던 교우 12명이 형벌을 두려워해서 배교하고 나가려 하자, 큰 소리로 그들을 권면하여 신앙을 회복하게 했다.

 

그런 다음 김씨 부자는 함께 영장 앞으로 끌려나가 치도곤을 맞고 순교했다. 당시 김마르티노의 나이 63세, 아들 김마태오는 39세였다. 순교하던 날 부자는 함께 기도했는데 그 소리가 노래 곡조같이 청아했고, 순교한 뒤의 안색은 살아있을 때와 같았다고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2월 9일, 정리=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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