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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박 마리나 - 한국 여성 최초의 가톨릭 수녀

11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1-16

[인물소개] 박(朴) 마리나 - 한국 여성 최초의 가톨릭 수녀

 

 

Ⅰ. 일본 최초의 여자 수도회 ‘미야코의 베아타스’ 회원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우리나라 여성들 중 천주교 신자로서 유명한 분으로는 세 사람이 있다. 첫째 오오시마(大島), 니이시 마(新島)를 거쳐 고오즈시마(神津島)로 유배된 오타 줄리아(Ota Julia)와 둘째 필리핀으로 추방된 박 마리나와 셋째 운젠(雲仙)의 유황천 열탕(熱湯)에서 벌거벗은 채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 당한 이사벨(엘리사벳)이다. 오타 줄리아와 이사벨에 관해서는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에도 소개돼 있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59) 그러나 박 마리나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면 그녀는 과연 어떤 분이었을까?

 

일본 최초의 방인(邦人) 여자 수도회는 나이토(內藤) 줄리아가 세운 ‘미야코의 베아타스(Beatas no Miyaco)’였다.60) 이 회원들을 달리는 ‘미야코의 비구니’라고도 부른다. 미야코(都)는 당시 일본의 서울, 지금의 교토(京都)를 말한다. 수도회의 명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 최초의 여자 수도회는 당시 일본의 수도 교토(京都)에 창립된 것이었다.

 

창립자 나이토 줄리아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무장(武將)으로 유명한 나이토 도쿠안(內藤德庵)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녀는 본디 아미타종(阿彌陀宗)의 비구니(比丘尼)였다. 그녀는 1566년경 태어나, 높은 신분의 집으로 시집을 갔으나 22세경 남편과 사별하고 미망인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신분이 높은 집안에서는 한국의 양반가와 마찬가지로 과부의 재혼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비구니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1596년, 그녀가 31세 때 오르간티노(Organtino, 1530~1609) 신부61)에게서 ‘줄리아’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귀부인이나 그 딸들이 천주교를 믿고 싶어도 남자와 만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개종의 길이 막혀 있었다. 나이토 줄리아는 당시 일본 상류사회 귀부인들 가운데 인격과 품성으로 명성이 높았었다. 그녀의 개종은 귀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녀는 귀부인들에게 전교하는 데 최적임자로, 열심히 전교하여 그 명성과 함께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불교에는 비구니가 있어서 귀부인들에게 전교를 하지만 천주교에는 그런 단체가 없었다. 나이토 줄리아는 귀부인들에게 전교하면서 비구니와 같이 전교할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때 서구에는 수녀원이 많았지만 일본에까지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뜻을 같이 하는 여성 5명과 함께 당시 미야코의 장로였던 오르간티노 신부와 모레혼(Morejon) 신부의 허락을 받아 두 신부 앞에서 청빈 · 정결 · 순명, 세 가지를 서원하고, 삭발하고, 수도자로서 검은 옷을 입고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여자 수도회 ‘미야코의 비구니’였다. 이 일본 최초의 여자 수도회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 바로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박 마리나’ 이다.

 

 

Ⅱ. 미야코의 비구니, ‘베아타스 수도회’

 

예수회 필리핀 관구장 프란치스코 코린(Colin)은 《필리핀 여러 섬에서의 예수회 포교사》를 저술하였다. 그 책 4권 30장에는 미야코의 비구니 수도회 창립 멤버의 간단한 약전이 소개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미야코의 비구니 수도회를 창설한 다섯 사람은 (나이토) 줄리아를 비롯하여 막달레나 나카시마(中島), 마리아 이카(伊賀), 마리나 박(朴), 마리아 무니 등이다. 그 중 박 마리나는 조선 상류 사회 양반 출신의 동정녀였다. 박 마리나는 비록 일본에서이지만 한국 여성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의 수녀가 된 것이다.

 

줄리아가 ‘미야코의 비구니’ 수도회를 세운 목적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류사회 귀부인들에게 전교하기 위해서였다. 코린(Colin) 신부는 “그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교도의 부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의 신성한 신앙으로 개종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줄리아는 ‘미야코의 베아타스’ 수도회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르간티노 신부와 모레혼 신부의 권고로 청빈 · 정결 · 순종의 세 가지 서원(誓願)을 하고 회칙을 정하고 각자 회칙을 지킬 것을 결의하였다. 그 회칙은 다음과 같다.

 

① 아침 4시에 일어나 묵상을 하기 위해 전원 성당에 모인다.

② 성모님께 호칭 기도를 바치며 매일 미사 성제를 드린다.

③ 점심때까지 남은 시간은 다른 신심행위를 하고, 때로는 바느질 혹은 다른 노동을 한다.

④ 오후 2시, 성당에서 묵상.

⑤ 성당에 모두 모여 성모님 호칭 기도를 드리고 밤에는 영적 독서 또는 노동을 한다.

⑥ 밤에는 성당에 모여 여러 성인 호칭 기도를 드린다.

⑦ 성찰

⑧ 영적 독서, 다음날 아침의 묵상을 준비한다.

⑨ 매주 3일을 단식한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⑩ 사순절 기간에는 40시간을 예배한다.

⑪ 예수 승천으로부터 성령 강림일까지는 매일 단식하며 40시간을 예배한다.

⑫ 사순절에는 여러 날 단식하며 다른 고업(苦業)이나 신심 행위를 한다.62)

 

이렇게 날마다 묵상과 기도로 신앙생활을 한 ‘미야코의 비구니’ 수도회는 점점 성장 · 발전하여 1614년에는 ‘20명 가까이’ 회원이 늘어났었다. 그런데 1614년 1월 31일 도쿠가와(德川) 막부는 돌연 금교령(禁敎令)과 함께 선교사 국외추방령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검색의 치밀함과 엄중함, 고문과 처형의 잔혹함, 이백 수십년 간의 장기간 행해진 박해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신앙 탄압이었다.63) 그때 일부에서는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일부에서는 배교하지 않을 경우 목숨만은 살려 국외로 추방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그 박해의 바람은 미야코의 베아타스 수도회에도 어김없이 불어 닥쳤다.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끝끝내 배교를 하지 않자, 나가사키(長崎)로 끌고 와서 마침내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64)과 나이토 줄리아의 오빠 나이토 도쿠안(內藤德庵)과 그 가족들과 함께 마닐라로 추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Ⅲ. 박 마리나와 베아타스 수도회원들이 겪은 박해와 고난

 

1614년 1월 31일 발표한 금교령은 베아타스 수도회에도 어김없이 불어 닥쳤다. 박해자들은 미야코의 비구니 수도회 수도원을 ‘기리시탄’(천주교)의 다른 교회와 함께 모두 파괴하고, “만약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면 가혹한 고문을 가하겠다” 하며 (나이토) 줄리아 등을 위협하였다.

 

여러 가지 위협 끝에 실행에 옮겨 그녀들을 거리로 끌어내 벼를 담는 볏섬에 넣어 조리돌림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볏섬 속에 몸을 넣어 꽁꽁 동여 매고 괴롭히는 이 형벌은 일본 말로 ‘다무라 츠메(俵責め)’라고 하는 비인도적인 잔혹한 형벌이었다. 그녀들은 여성으로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야코의 관장은 그것이 그녀들에게 가해진 최대의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런 치욕을 참아내는 것을 보고 그녀들을 한 사람씩 따로따로 불러내 스스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버리도록 설득하였다.

 

하지만, 그녀들이 한결같이 “목숨을 걸고 반항한다”고 말하므로, 회원 전원을 벌거벗겨 다시 거리로 끌어내 조리돌림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나이토) 줄리아와 수도회원들은 눈이 무섭게 흩뿌리는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 속에서 떨고 있었다.

 

다시 관장의 명령에 의해 무장한 병사들이 와서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면 나체 그대로 사창가로 끌고가, 거기서 그녀들을 욕보이고 그녀들이 보배로이 여기는 정결을 빼앗으리라고 위협하였다.

 

이 협박은 하느님을 섬기는 수도회원들에게 큰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나이토) 줄리아는 젊은 수도회원 가운데 그 소중한 정결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이 나올까 염려하여 숨도록 권하고 관원의 눈에 띄지 않게 도피시켰다.

 

(나이토) 줄리아는 8인의 수도회원과 함께 위대한 용기를 갖고 병사들과 싸울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가 와서 그녀들을 붙잡아, 그들의 몸을 목만 남기고 볏섬 속에 넣어 새끼로 꽁꽁 동여매고 성문 앞에 있는 차가운 강가로 끌고 가, 땅위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아침이 되어 병사와 관리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고 그녀들을 볏섬에서 끌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이 만약 살아 있는 채로 볏섬에서 나오면 배교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녀들은 볏섬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였다. 왜 이러느냐고 묻자, 병사들은 그녀들을 석방하지 않고 시내로 끌고 가, 거기서 새로운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시녀들은 “만약 그렇다면 여기로 싣고 올 때와 같이 볏섬 속에 그대로 넣어 꽁꽁 묶은 채로 끌고 가십시오”하고 말하였다. 병사들은 그대로 시행하였다.

 

그리스도의 증거자인 이들 뛰어난 여성들은 개선의 마차를 탄 채, 볏섬 속에 꽁꽁 묶인 채로 당당하게 미야코의 시내로 끌려 들어왔다. 관장은 그 사이 일어난 일을 알고 9인 전원을 한 이교도의 집에 맡기고 그녀들의 이름, 고향, 성격 등을 써내라고 하였다. 그 이름표에 의해 그녀들이 누구인가 - 신분이 높은 집안 태생임을 – 알고 관장은 그녀들에게 이런 모욕을 가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미 보고를 받아 귀부인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신분이 높은 여성들인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행한 형벌에 대해 당혹해 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시를 받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家康)에게 보고하였다.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그녀들 전원이 다수의 감시 아래 배에 태워져 나가사키(長崎)로 끌려가, 거기서 (필리핀) 마닐라로 추방되었다. 마닐라에 도착한 것은 1614년 12월 21일이었다.

 

마닐라에서 그녀들은 예수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성 밖, ‘성(聖) 미카엘’ 마을의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나이토) 줄리아와 13명의 수도회원들은 그곳에서 몇 년간 열심히 수도생활을 하며 미사에 참석하고, 성사를 받기 위해 수도원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가는 일 외에는 수도원에서 떠나는 일 없이 밤낮의 시간 대부분을 기도로 보내고 있었다.65)

 

 

Ⅳ. 박 마리나의 죽음

 

박 마리나는 1606년에 천주교 신앙으로 개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사랑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세례를 받고 6년 후에 청빈 · 정결 · 순종의 세 가지 서원을 하고 나이토 줄리아의 신성한 동료가 되어 주님에게 온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수도회를 유지할 비용이 떨어지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수도회에 내놓았다. 또 그녀는 수도회의 회칙을 잘 지키며 다른 수도회원들과 함께 볏섬으로 둘둘 말아서 꽁꽁 묶고 고통을 받게 하는 ‘다무라 츠메(俵責め)’ 형벌을 받으며 그 치욕을 잘 인내하고 참아냈다. 수도회원들이 볏섬으로 둘둘 말아 꽁꽁 묶여 교토(京都)의 거리로 끌려 나와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조리돌림을 당할 때 그녀는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서투른 일본 말로 “목숨을 바칠 만큼 거룩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고 계속하기 위해 왔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추방된 필리핀에서 많은 병을 앓았다. 특히 실명(失明) 때문에 심신의 수련을 위해 믿기 어려울 만큼 큰 인내력을 가지고 그 고통을 이겨내었다. 죽음에 임박하여 수도회의 창립자였던 거룩한 영적 어머니, 그때 이미 죽은 나이토 줄리아가 그녀 곁에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스스로 ‘모니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모니카여! 저를 만나러 와주셨군요. 아름답게 빛나는 줄리아님이시여! 보이지 않습니까? 제 곁에 내려오신 천사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들의 위로 속에 그녀는 1636년 5월 25일 선종하였다. 64세였다.66)

 

[학술지 교회사학 vol 7, 2010년 12월(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하성래(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

 

원본 : http://www.casky.or.kr/html/sub3_01.html?pageNm=article&code=133239&Page=17&year=&issue=&searchType=&searchValue=&journa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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