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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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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23: 토마스 머튼의 기도 방법

134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10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23) 토마스 머튼의 기도 방법


“하느님을 뵙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 있어라”

 

 

성숙해진 토마스 머튼은 어떻게 기도를 하였을까? 사실 초기 작품에서는 머튼 자신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잘 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압둘 아지즈(Abdul Aziz)에게 이렇게 자신의 기도의 일상적인 방법에 대해 말한다. “저는 기도에 관한 매우 단순한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의지와 하느님의 사랑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홀로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는 믿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명상은 예언자에 의해 묘사된 다음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마치 당신이 하느님을 뵙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 있어라’”(「The Hidden Ground of Love」, p63-64). 그러나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절대 금할 것을 강조하였다.

 

하느님 현존 가운데 그분께 집중하며 그분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상적인 기도를 바친 머튼은 기도를 통해 우리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하느님을, 우리 안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도 안에서 예전에는 이것이 하느님의 현존이 아니라고 여겼던 순간이 하느님의 강한 빛에 의해 그분의 현존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님’(無, nothingness)이었던 것이 이제 하느님의 ‘충만함’(fullness)이 되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 바로 그에게 있어 기도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제 마음속에는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완전히 인식하려는 커다란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는 ‘無’와 위대한 침묵의 중심에서 위로 올리는 일종의 찬양입니다. 만약 제가 여전히 저 자신에 ‘자아’에 머물러 있다면, 이것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느님만이 제거해 주실 수 있는 장애물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시다면, ‘無’는 완전히 명료하게 될 것입니다”(「The Hidden Ground of Love」, p63-64).

 

여기서 ‘아무것도 아님’(無)이 명료해진다는 말은 “기도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발견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다른 면’을 직접적으로 찾는 것”이기에 기도를 통해 몰랐던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다(같은 책, 64). 따라서 기도는 영적인 성장의 기본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도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바칠 수 있을까? 기도에 대한 중요성을 수없이 들어왔고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정작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참 많다. 머튼은 이런 이들을 위해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그 자체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의 삶을 원한다면, 기도함으로써 그 방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기도를 배우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사실 오랜 기도 생활을 한 이들은 기도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술적인 면이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고, 자신의 방법이 절대적이지도 않다. 정해진 기도의 규칙을 어겼다고 그것이 기도가 아닌 것이 아니다. 9일 기도를 바치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하는 가운데 하나가 “9일 기도하다가 한 번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까?”이다. 하루 빠지면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고 바로 이어서 바치면 된다.

 

이러한 기도에 있어 지나친 형식주의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도 방법만을 고집하여 다른 이들에게 그 방법대로 할 것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영적 교만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편안한 영적 휴식과 같은 시간이다. 이미 하느님 품 안에서 있는데 여기에 지나친 기교적인 면이나 방법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대인들은 너무 서두른다. 그리고 지나치게 분석적이다. 심지어 기도에 있어도 체계적인 방법을 습득하여 관상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거나, 기도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이내 실망하여 기도를 포기하기도 한다. 기도의 삶을 위해서는 삶의 템포를 늦추어야 한다.

 

머튼은 말한다. “모든 순간은 하느님의 선(善)의 때이며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알아차릴 기회는 기도 안에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때에 그곳에 있으며, 우리가 그것에 시간을 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오랜 인내의 과정이기도 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8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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