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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4일 (수)부활 제4주간 수요일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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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오직 하나 주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

60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7-17

[수녀원 창가에서] 오직 하나 주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

 

 

“오직 하나 하느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가톨릭 성가」 416; 시편 27,4 참조).

 

봉쇄 수녀원에 입회한 지도 14년이 되었다. 20대 청춘을 봉쇄 안에 심고 내 나이는 벌써 활짝 꽃핀 30대 중반이다. 입회했을 때 나는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했다. 예수님과 성모님, 성인 성녀, 천사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수녀들이 천상의 음률로 날마다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기도가 얼마나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었는지! 20년 동안 세상에 살면서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목마름과 공허감이 드디어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길

 

초등학교 때부터 봉쇄 수녀회의 수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던 나는 세상을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봉쇄 안에서 침묵 가운데 기도하며 고독의 삶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모습 등을 그리곤 하였다.

 

봉쇄 수녀원에 가 본 적도 없었고, 부모님과 친척들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굉장히 힘든 삶이라는 얘기만 들었다. 무심코 “나는 봉쇄 수녀가 될 거야.” 하고 던진 한마디 말이 불씨가 되었다.

 

그 뒤 수녀원 소개에 관한 책들을 통해 봉쇄 수녀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성소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도미니코 수도회를 통해 우리 수녀원을 알게 되었다. 수녀들의 삶을 짧게 소개했는데 그 중에 ‘한밤중에 바치는 독서 기도’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의아하면서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1년 정도 충실히 수녀원을 방문했다. 시작은 하지만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하여 끝내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 나를 볼 때,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았고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수녀님들의 친절한 환대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첫 방문 때 내 계획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내 계획이란 먼저 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서 부모님을 조금 도와 드리고 입회하겠다는 것이었다. 수녀원에서는 내 입회를 두고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입회를 결정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 전철을 타고 직장에 가는 길이었다. 내려야 할 역에 열차가 도착했는데도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을 차려 보니 문이 막 닫히고 전동차가 출발하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말했다. “성모님, 이 문을 열어 주시면, 저 수녀원에 빨리 입회할게요.”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전철이 그 순간 기적처럼 멈추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성모님의 분명한 응답이고 표징이었다. 나는 잽싸게 뛰어내렸고 문이 닫히자 전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살아 있는 표징을 가슴에 품고,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을 향해 나도 단호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나이가 어리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몰래 집을 나와 입회하였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이나 사건과 상황,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각자에게 매 순간 다가오시며 말씀하신다. 다만 우리 마음의 눈과 귀가 닫혀서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안경을 통해 바로 내 옆에, 내 앞에 나와 함께 계시는 그분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분께서 채워 주시니

 

어릴 때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본당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어 지원을 했다. 시험 당일 성가대 선생님과 언니들이 심사 위원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막상 혼자 노래를 부르려니 너무나 긴장되었다. 결국, 시험에 떨어져 성가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뒤로는 사람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날마다 밤낮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다 보니 자연스레 치유된 것 같다.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의 수녀로서 날마다 하느님께 찬미드리는 삶은 나에게 너무나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밤중의 독서 기도와 새벽 5시의 기상이 두려웠다. 노래하는 것도 힘들고, 피아노를 배웠지만 전례 반주를 한다는 것도 그 자체로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어려움을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히 채워 주셨다. 인간적인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를 불러 주신 그분께서 그때그때 필요한 은총을 주심을 새록새록 실감하고 있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교회는 하루를 여러 시간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바치는 시간전례(성무 일도)를 사제와 관상 수녀들에게 맡겼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봉쇄 수녀들의 첫째 사도직은 바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희생 제사이다.

 

우리 수녀원에서는 시간 전례를 모두 노래로 바친다. 미사는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고자 그레고리오 성가와 더불어, 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어 성가를 번갈아 바친다. 특별히 한밤중에 바치는 독서 기도는 매력적인 힘이 있다.

 

입회한 지 14년이 되었으니 이제 힘들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때때로 졸음과 싸우기도 하고 종소리를 못 들어 푹 잘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많이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다. 그 시간에 온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분과 함께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부 도미니코 성인은 열성을 다해 시간 전례를 바치고 밤 기도와 밤샘 기도도 항구하게 하셨던 분이시다. 우리 수녀들은 “주님, 죄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며 부르짖던 사부님의 소리를 늘 기억하며 밤마다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한다. 나아가 고통받고 방황하는 세상의 모든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과 책임감을 느낀다.

 

한밤의 기도가 끝나고 각자의 수방(수도자들의 독방)으로 돌아가며 각 수녀는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 기도 1단씩을 고리 기도로 바친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희생 제사를 드리며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몸 바친 ‘도미니칸’으로서 산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스물두 명의 우리 수녀들의 목소리는 개성이 강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수녀도 있고 못 부르는 수녀도 있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나 가냘픈 목소리 등 다양하지만 한목소리로 일치되어 아름다운 찬미의 노래로 울리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한마음으로 그분을 관상하며, 한목소리로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같은 빵을 나누며 마침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삶을 함께 나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제들이 오손도손 한데 모여 사는 것!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전애리 동정 성모의 안나(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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