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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잊었던 것, 일상의 행복

68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5-0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잊었던 것, 일상의 행복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휴머니스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할 줄을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고 믿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시켜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생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알베르 카뮈의 책 ‘페스트’ 중에서)

 

명동성당 구내에 봄을 알리는 목련 꽃망울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얼마 전 TV를 통해 대구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을 보았습니다. 일주일 넘게 집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 영안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병원으로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행히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들, 자원 봉사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분들 중엔 은퇴하여 의료 현장을 떠나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한 간호사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분들이 지치지 않게 응원해줬으면 해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견디겠지만, 감염의 공포 때문인지 의료진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죠. 의료진도 사람인데, 순간순간 두렵고 무서워요. 전쟁터 맨 앞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잘 싸우게 만들어 주는 건 국민들의 몫이라고 봐요.”

 

- 허영엽 신부가 찍은 주말 오전의 명동.

 

 

이 사태가 끝나면 우리사회는 분명히 한 단계 발전할 것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마주하고 있는 상황들은 몹시도 당황스럽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겪지 못한 일들입니다. 정부는 마스크 상시 착용, 모임 및 집회 금지 등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 중단’이라는 낯선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시작점인 중국과 가까운 탓에 많은 확진자가 생겨났고,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나라들에게 입국을 저지당하는 암담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도시마다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지키며 썰물처럼 빠져나가 차도 사람도 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매일 몇 십만 명이 북적거리던 서울 명동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쓸쓸한 기운마저 감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확진자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공개하고 있으며, 확진자가 출입했던 장소는 바로 소독 후 폐쇄 조치에 들어갑니다. 확진자가 접촉했던 사람들은 꼼꼼히 추적하여 몇 백 명이 되더라도 모두 격리 조치시키고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당국이 언론에 나와 소상하게 국민들에게 브리핑합니다.

 

역시 모든 국가나 사회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협조와 희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스크 구입에는 아직 불편함이 있습니다. 아침 새벽부터 줄을 서고 몇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한 장을 못 산 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TV에 나올 때는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장씩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있음은 감사할 일입니다. 요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확산에 당황한 선진국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재기 없는 우리나라의 침착한 시민 의식에 대해 새롭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삶을 돌보고 이웃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체계화된 의료체계와 의료보험제도, 의료기술의 선진화와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모습들에 세계가 감탄하고 있습니다. 시민들 역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손 씻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려울수록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특징, 바로 정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얼마 전에는 한 장애인이 자신에게 있는 마스크 열 몇 장을 모두 고생하는 경찰관들에게 준다며 손편지와 함께 파출소 앞에 몰래 두고 간 사연이 CCTV에 고스란히 찍히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제 이 사태가 끝나면 우리사회는 분명히 한 단계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경험이 준 교훈을 잊지 말고 겸손해지기를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일상이 곧 축복’이란 것을 잊고, 주님이 주신 행복을 곁에 놔둔 채 엉뚱한 것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릅니다. 매일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하고 교회 구성원들과 함께한 일상들이 축복이고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부터 스스로 절제하며,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즐겼습니다. 연휴가 되면 외국 여행을 위해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 해마다 그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행은커녕 매끼를 걱정하며 현재도 굶주림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많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의 공포 때문에 마스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중이 모인 자리나, 공공장소에서 가급적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이를 험담하고 뒷말을 하며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 퍼 나르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침묵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볼 때입니다.

 

텅 빈 성당 안에서, 하루아침에 성당을 찾아 기도하고 위로받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이 어려움도 시간이 흐르면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그동안의 잘못을 참회합시다.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경험이 준 교훈을 잊지 말고 겸손해지기를 청합시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어서 빨리 신자들과 얼굴을 함께 마주하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주님에게 은총을 청하며 독자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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