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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6: 로마 세 분수 성당(Chiesa di Tre Fontane)

54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1-18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6) 로마 세 분수 성당(Chiesa di Tre Fontane)


바오로 사도,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지식인

 

 

- 바오로 사도는 왼손에는 성경, 오른손에는 '성령의 칼'을 들고 오늘도 하느님의 진리를 지키고 있다. 로마 성문 밖 성바오로대성전 정원에 세워져 있는 바오로 사도상.

 

 

“대사님, 이곳에서 물이 실제로 나왔나요?”

 

“네,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당 이름에 분수라는 말이 들어갔어요. 우리식 표현으로는 분수라기보다 샘입니다.”

 

의문을 가질 만도 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멀쩡한 땅에서 샘물이 솟았다니 한 번 정도 의문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로마에 있는 ‘세 분수 성당’ (Chiesa di Tre Fontane) 이야기입니다.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로마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코스 가운데 하나이지요. 네로 황제 시절, 바오로 사도가 참수된 곳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망나니의 칼에 잘려나간 머리가 땅에 떨어져 세 번 튀었고, 머리가 튄 자리에서 물이 솟았답니다. 성령의 물이! 그래서 세 분수 성당입니다.

 

 

바오로 참수 후 생겼다는 샘

 

저도 사실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바오로의 참수는 약 2000년 전의 일인데, 머리가 튄 자국에서 물이 솟았다면 언제까지 물이 나왔을까? 분수 앞 안내판에는 1950년대까지 물이 나왔다고 애매하게 적혀있습니다. 더 믿을만한 정보는 없을까?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생각났습니다. 괴테는 1787년 이곳을 순례한 뒤 여행기에 비교적 상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로마의 남쪽 테베레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간 정도 크기의 성당이 있는데, ‘세 분수’라는 이름의 성당이다. 이 샘들은 바오로가 참수될 때 그의 피가 뿌려지면서 솟아 나왔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샘물이 흘러나온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으로 기록해 놓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3년 전에는 분명히 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저는 순례객들에게 괴테의 여행기를 언급하면서 “분명히 샘물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1월 25일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의 회심은 교회사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교의 틀을 만들었고, 그 그리스도교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과 파장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현재 세계는 가톨릭 개신교 동방정교회 등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문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 지식인의 역할이 인류 역사에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친 사례가 또 있을까요?

 

저는 가끔 바오로를 신앙인이 아닌 지식인으로 묵상하곤 합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유다교 율법은 물론이고 역사학 수사학 등에 통달했고, 희랍어 아람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 어학에도 능통했습니다. 예수님은 바오로의 이런 재능이 필요했나 봅니다. 바오로를 ‘예수님 박해자’에서 ‘예수님 사도’로 변신(회심)시켜, 누구도 할 수 없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3년 동안 수많은 어록을 남기셨습니다. 모두가 거룩한 말씀이었고 주옥같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은 방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구슬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갈릴래아의 열두 사도들은 말씀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고, 말씀 간의 연관성도 파악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구슬이 많으면 뭐합니까? 꿰어내야 보배지요.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오로는 달랐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은 물론이고 할례와 구원 등 신학적 쟁점들을 명쾌한 논리로 체계화하였습니다. 구슬을 꿴 사람이 바로 바오로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완성한 최초의 신학자입니다. 바오로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리스도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탁월한 국제화 전략

 

바오로의 탁월함은 그리스도교의 국제화(전교 전략)에 있습니다. 바오로는 빌라도 총독의 두목이 있는 악당들의 소굴, 로마에 뛰어들었습니다. 딸랑 십자가 하나 들고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리고 세 분수 성당 자리에서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그 후 약 300년이 지나 밀라노칙령이 나왔습니다. 세계의 중심, 제국의 수도, 로마 한복판에 드디어 십자가가 꽂혔습니다. 바오로의 국제화 전략이 적중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민들레 홀씨 되어 세계만방에 흩어져 꽃을 피웁니다. 바오로는 오늘도 왼손에는 성경을, 오른손에는 ‘성령의 칼’을 들고 영원의 도시 로마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9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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