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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1일 (일)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가톨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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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의 승천, 올리브산 승천 경당 그리고···

188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11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의 승천, 올리브산 승천 경당 그리고···

 

 

- 올리브산의 주님 승천 기념 경당.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십니다. 마지막에는 사도들이 함께 있는 가운데 “성령이 내리면 너희는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승천하십니다(사도 1,3-11 참조).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은 ‘올리브산’입니다(사도 1,12). 사도행전의 저자가 쓴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을 “베타니아 근처”라고 언급합니다(루카 24,52). 베타니아는 올리브산 동쪽 비탈에 있는 마을이지요. 베타니아에서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바로 예루살렘 도성이 눈 아래 펼쳐져 보입니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를 따라서,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가 올리브산 정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상에 있는 한 동굴에 모여서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하곤 했습니다. 그 동굴은 오늘날 주님의 기도 성당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로마 제국 황제 가문의 한 부유한 부인이 동굴 북쪽에 경당을 지어 봉헌했습니다. 원형으로 된 경당은 예수님의 승천하신 곳임을 상징하는 의미로 천장이 뻥 뚫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로 된 바닥 가운데는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발자국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신심 깊은 신자들은 그 발자국이 예수님이 남기신 발자국으로 여겼다고 하지요.

 

- 천장이 막힌 주님 승천 기념 경당.

 

 

이 경당은 7세기에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그런데 아르쿨프라고 하는 프랑스 주교가 이곳을 순례하고 돌아가서는 예수님의 발자국이 나 있는 바위가 승천 경당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그 후 12세기에 십자군이 와서 팔각형으로 된 기념 경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십자군이 바위에 발자국을 새겼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12세기 말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차지하면서 경당 주변을 담으로 쌓고 뚫려 있던 천장 구멍을 메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자국이 있던 바위 일부를 예루살렘 성전산에 있는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교 대사원)에 옮겨놓았습니다. 무슬림도 예수님을 예언자로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주님 승천 기념 경당 안 예수님의 발자국이 새겨진 바닥돌.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발자국이 찍혔다는 돌바닥

 

오늘날 올리브산 정상에 있는 주님 승천 기념 경당은 이렇게 천장이 막힌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고 있습니다. 이 경당은 지금도 한 이슬람 재단이 관리하고 있지요. 순례자들은 경당 안에 들어가면 바닥 한쪽에 예수님의 발자국이 찍혔다는 돌바닥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당은 좁아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가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공적인 전례 행위가 평소에는 잘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체로 온 순례객들은 경당 안을 둘러본 후 바깥 공터에서 관련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거나 간단한 기도를 바치면서 주님 승천의 의미를 되새기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 승천 대축일에는 예외적으로 경당 안에서 전례를 거행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와 관련해 마태오복음은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6-20)

 

- 시온산 성모 영면 성당.

 

 

마태오복음의 이 대목대로라면, 예수님의 승천 장소는 예루살렘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올리브산 정상이 아니라 갈릴래아의 어느 산입니다. 그래선지, 갈릴래아 북쪽 행복선언 산이라고 부르는 에레모스 언덕 한쪽에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쳐라’ 하신 예수님의 분부를 라틴어로 새겨 놓은 기념 바위가 호수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하늘만 바라보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사람 사는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함께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그 부르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렇게 살도록 다짐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시온산 성모 영면 기념 성당’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고을 나자렛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성모님의 마지막과 관련된 예루살렘 성지 한 곳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합니다. 시온산 성모 영면 기념 성당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삶을 마친 후에 죽어서 묻히신 것이 아니라 아들 예수님에 의해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성모승천’, 더 정확하게는 성모 ‘몽소승천’ 혹은 ‘피승천’이라고 부릅니다. 이렇다 보니 마리아에게는 죽음이라는 표현 대신 ‘깊은 잠에 빠짐’이라는 뜻인 ‘영면’(Dormition)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성모 영면 기념 성당은 이를 기념하는 성당으로, 예루살렘 시온산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하신 최후 만찬 기념 경당 인근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초세기부터 신자들이 모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회당이 있었다고 하지요. 4세기 말에 이 회당 옆에 팔각형 모양의 기념 성당이 건립되고 얼마 후에는 더욱 증축됐는데, 이때부터 이 성당을 ‘거룩한 시온’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모 영면 성당 지하의 누워 잠들어 계신 성모상.

 

 

하지만 이 성당은 7세기 초 페르시아군에게 파괴됐고 11세기에 다시 파괴됐습니다. 그 후 십자군들이 아치형의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건립했는데, 이 성당을 ‘시온산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13세기 초에 성당은 다시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찾는 성당은 1910년에 완공됐습니다. 그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1898년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당시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이슬람 술탄이 폐허가 된 채 오랜 세월 방치돼 있던 이 부지를 황제에게 선물했습니다. 황제는 이 부지를 독일 교회에 넘겼고 그래서 성당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이 성당은 오늘날까지 독일 베네딕토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성당 지하 경당 가운데에는 누워 잠들어 계신 성모 마리아의 전신상이 있고 순례자들이 그 둘레에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이 성당은 오르간 소리가 아주 아름다워 연주회 장소로도 사용된다고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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