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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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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이렇게 보니, 하느님 참 닮으셨네요!

64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2

[레지오 영성] 이렇게 보니, 하느님 참 닮으셨네요!

 

 

누군가로부터 “하느님 닮으셨네요!”라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씀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다면, 우선 이 말씀을 한 번 서로 주고받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참, 하느님 닮으셨네요!” … 어떠신지요?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이 아닌가 합니다.

 

복음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다스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하늘나라의 복음’, ‘하느님의 복음’, 혹은 ‘복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다스림은 “한 처음”(요한 1,1) 세상 시작부터 있어온 것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의 시작도 한 처음부터입니다.

 

한 처음에 우리에게 전해진 첫 복음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였습니다. 처음에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참 좋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참 좋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요? 처음의 그때처럼 참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 참 좋았던 그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복음화(福音化)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 아주 특별하게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으로’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곧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6-27절에 세 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1,26)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1,27ㄱ)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1,27ㄴ)

 

하느님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진 이 특별함을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은 슬프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 때문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를 당신의 모습으로, 당신을 닮게 만들었을까요? 보기를 드립니다. 1번 심심해서, 2번 그냥, 3번 백지(백지는 경상도 사투리로 ‘그냥’이라는 의미입니다.), 4번 당신을 닮으라꼬! 참고로 저는 답을 맨 뒤에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성 생활은 내가 지닌 신령한 본성을 사는 것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인간만을 당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닮으라고 우리를 하느님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우리 인생 여정(人生 旅程)의 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닮도록 처음부터 만들어졌고 그렇게 초대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만큼 그분의 집인 천당(天堂)에 머물 수 있게 되고, 닮은 만큼 그분의 나라인 천국(天國)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삶 속에서 천국의 증거인 기적(奇蹟)들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을 닮아가려는 사람들의 거룩한 노력 속에서 하느님의 모상이 지닌 존엄(尊嚴)의 근원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안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성 생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성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단순화시킬 때, 영성 생활은 ‘영성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靈性)’이라는 말은 ‘신령할 영(靈)’자와 ‘본성 성(性)자’를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영성 생활은 내가 지닌 신령한 본성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 신령한 본성, 곧 영성(靈性)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한 처음부터 선물로 받아 지니고 있던 하느님을 닮은 모습인 ‘하느님의 모상성(模像性)’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루어야할 진정한 복음화는 우리가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이 하느님 모상성을 회복(回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 처음에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첫 복음인 “참 좋았다”, “참 좋구나”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였기에 들을 수 있었던 복음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것을 그리워해 봅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해 봅시다. “하느님 닮으셨네요!” ‘하느님 닮으셨네요!’라는 이 말은 ‘성당 가시죠!’라는 말보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복음인 것 같습니다. “성당으로 오세요.”라는 말을 전하기에 앞서 “하느님 닮으셨네요.”라고 먼저 말해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이들이 모여서 그것을 복음으로 전하는 성당으로 초대할 수 있도록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노력했으면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깨달음과 그것에 대한 인정이 하느님을 닮아가는 영성생활의 한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지닌 하느님의 모상성을 인정하며 영성을 살 때, 우리는 천국에서 살며 기적을 깨닫고 만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을 수 없다면 애초에 그렇게 만들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서로에게 말해 줍시다. 우리에게 있는 그분의 모상성이 서로 기뻐하며 공명(共鳴) 할 수 있도록, “이래~ 보이, 하느님 참 닮으셨네요!”라는 복음을 전해봅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8월호,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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