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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에 나타난 천주교

167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29

[경향 돋보기 - 대중 매체와 가톨릭] 대중 매체에 나타난 천주교

 

 

코미디 장르에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들다

 

1993년 5월 개봉하여 인기를 끈 영화 ‘시스터 액트’(에밀 아돌리노 감독)는 삼류 흑인 가수 ‘들로리스’가 범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쫓기다가 경찰의 보호 조치로 수녀원에 가게 된 이야기다. 말썽을 일으키며 적응하지 못하던 그녀가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수녀원과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듬해 속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보다 앞서 1991년 6월 초연한 뒤 9,200회 이상 최다 공연 기록을 세우며 천만 관객을 동원한 최장수 공연이 있으니, 바로 뮤지컬 ‘넌센스’이다. 의문의 야채수프를 먹고 죽은 수녀들의 장례비 마련을 위해 5명의 수녀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렸다. 쉴 새 없는 수다와 유머, 예측하기 힘든 말과 행동이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을 안겨 준다.

 

2004년 개봉된 허인무 감독의 ‘신부 수업’은 모범적인 신학생 규식이 교황이 축성한 성작(聖爵)을 깨뜨리는 사고를 저지르고, 이른바 ‘영성 강화 훈련’을 명받아 변두리 작은 성당으로 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그녀’에게 첫 입술을 빼앗기고 만다. 더구나 ‘그녀’는 그곳 성당 주임 사제인 남 신부님의 조카다. 제목 ‘신부 수업’은 예비 ‘신부’(神父)와 예비 ‘신부’(新婦)를 모두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오늘날 코미디 장르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 교회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고고하고 성스럽다는 고정 관념을 유머 섞인 대사와 행동, 우발적 사건 등을 통해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규범을 아슬아슬하게 위반하기도 하지만, 귀결은 다분히 교훈적이거나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해피엔드’이다.

 

 

멜로물의 배경이 되다

 

“이영옥이 며칠 전 촬영이 끝난 ‘13월의 정사’라는 영화에서 신부를 유혹하는 여대생 역을 맡았는데 ‘요염한 여인 역을 여러 번 했지만 이번만은 망설여졌다.’고 고백. 극중 이야기지만 신부와의 관계에 저항을 느끼게 된 것은 지난 1월부터 서울 역촌성당에 나가고 있기 때문.”

 

동아일보 1981년 10월 10일자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제작사 대표는 물의를 우려하여 “아무래도 영화를 다시 찍어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 영화는 ‘13월의 연정’(박용준 감독)으로 제목이 바뀌어 1982년 6월 개봉되었다.

 

2003년 1월 30일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서는 MBC 미니시리즈 ‘러브레터’의 프롤로그인 사제 서품식 장면이 촬영되었다. 촬영 현장에는 당시 홍창진 신부(과천 별양동성당 주임)가 자문역으로 초빙되었다. 드라마는 ‘사제로서의 길’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길’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제작진은 주교회의에 2002년 10월 자문을 요청했고, 이에 주교회의 산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총무 홍창진 신부가 자문에 참여했다. 제작진은 홍 신부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했다. 천주교 사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실상 첫 드라마였고, 교회가 제작 과정 자문에 참여한 첫 드라마이기도 했다.

 

성직자나 교회가 남녀 간 사랑 이야기, 곧 멜로물의 소재와 배경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채널에서도 방영된 콜린 매컬로 원작 ‘가시나무새’가 대표적이다. 로마 가톨릭 사제인 랠프와 성숙한 아가씨로 자란 매기의 평생에 걸친 사랑과 고뇌를 담았다. 이런 멜로물에서는 교회가 제도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한 위반 가능성과 이를 둘러싼 내외적 갈등이 묘사되곤 한다. 이 점이 시청자나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지나치게 말초적으로 흐를 위험도 없지 않다.

 

 

초자연적 현상과 관계하다

 

구마 의식을 주요 소재로 하는 영화, 드라마가 2010년대 중반 이후 연이어 나오고 있다. 2015년 11월 개봉하여 540만 관객을 모은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이 대표적이다. 잦은 돌출 행동으로 교회의 눈 밖에 난 ‘김 신부’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소녀를 구하려고 그의 구마 의식을 도울 또 한 명의 사제를 찾는다. 모두가 이를 기피하는 가운데 ‘최 부제’가 선택되고, 그는 그 일을 돕는 것과 동시에 김 신부를 감시하라는 임무도 맡는다는 내용이다.

 

2018년 9월 OCN에서 방영된 드라마 ‘손 더 게스트’(the guest)는 영매인 ‘윤화평’이 귀신 들린 사람을 찾아내면 사제인 ‘최윤’이 귀신을 쫓아내고, 형사 강길영과 무당 육광이 그런 그들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서 기이한 힘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범죄에 맞선다.

 

‘손 더 게스트’에 이어 같은 방송사에서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방영된 ‘프리스트’도 드라마 소재로 구마 의식을 하는 가톨릭 사제를 등장시켰다. 주인공 오 신부는 남부 가톨릭 병원 여의사인 함은호와는 지난날 연인 사이로, 그는 악령에게 빙의된 그녀를 구하고자 지난날의 기억을 지우고 구마 사제가 된다.

 

이렇게 천주교와 관련 있는 ‘구마’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는 것에는 지상파 중심이었던 방송계 지형이 다양한 채널로 다변화되었다는 배경이 있다. 지상파 채널에서 특정 종교를 중심 내용으로, 더구나 ‘구마’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방송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소재의 다양화’라는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OCN에서 2017년 8월 첫 방영한 사이비 종교 집단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 ‘구해줘’, 같은 방송사에서 2018년 3월부터 방영한 이단 교회가 등장하고 ‘신기’(神氣)있는 형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의의 보루’로서의 교회와 성직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톨릭교회와 사제가 등장하는 영화로 큰 인기를 모은 것은 1986년 개봉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일듯 싶다. 1750년 남미 오지로 선교 활동을 떠나 과라니족 원주민 마을에 교회를 세우려는 가브리엘 신부와 이 원주민들을 사고팔던 악랄한 노예상 멘도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해 변화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영화 속 명대사로 남았다.

 

1989년 개봉된 존 듀이건 감독의 ‘로메로’는 엘살바도르 군사 정권의 폭압 속에서 시민을 지키고 성직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로메로 주교의 모습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촉발된 전반적인 민주화 분위기와 맞물려 이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 영화는 당시의 ‘80년대 군사 정권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최근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열혈 사제’에서 김해일 신부는 전통적인 사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지난날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로 말미암아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그는 사제가 되어서도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그의 은사로 등장하는 이영준 신부는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배역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기란 어렵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시민들은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에서 민주화의 퇴행 가능성을 봤다.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정부가 적폐 청산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으로 해결되어 나가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점들이 ‘열혈 사제’가 누린 인기의 배경이 아닐까.

 

 

상업주의의 자극적 수단으로 오용되기도

 

2010년 9월 임신한 수녀 모습을 내보낸 ‘안토니오 페데리치’ 아이스크림 광고가 ‘영국 광고 기준청’(ASA)에 의해 광고 금지 조치 처분을 받았다. 특정 종교, 곧 가톨릭을 조롱하고 왜곡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수녀로 분장한 만삭 모습의 모델이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광경이 묘사된 광고였다. 안토니오 페데리치 측은 그 전에도 수녀가 상의를 반쯤 벗은 신부와 키스하려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내보냈다가 이 또한 금지 조치를 당한 바 있다.

 

2005년 3월 청바지 브랜드 ‘마르테 프랑수아 저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면서, 여성 예수와 에로틱한 모습의 제자들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결국 이 광고는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게재 금지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사진이 이미 널리 유포된 탓에 업체 측은 사실상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의류업체 베네통은 1992년 신부와 수녀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제작했다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베네통 측은 ‘사랑이 조직과 제복을 초월한다.’는 뜻을 광고에 담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종교의 전통과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많은 비판 속에 광고에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지만, 이 사실이 언론 매체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다음이어서 베네통은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한 셈이었다.

 

이렇듯 교회와 성직자, 수도자의 모습이 광고에서 오용되는 경우는, 유럽에 기반을 둔 업체에서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이것이 우연이기만 할까. 가톨릭 전통과 역사의 종주지라 할 수 있는 유럽이기에, 오히려 그것을 자극적인 상업주의 수단으로 왜곡하고 오용하는 것의 극적 효과를 의도한 것은 아닐까 싶다.

 

* 표정훈 요한 - 출판 평론가, 작가.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특임 교수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사를 역임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탐서주의자의 책」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표정훈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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