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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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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는 죽음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261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1-14

교회는 죽음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죽음, 하느님께 돌아가는 새로운 삶의 시작

 

 

살아 있는 이들보다 죽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 어딜까? 죽은 이들이 잠든 묘원이다. 가족 혹은 친지나 친구를 기리기 위해 그곳에 서면 “사람은 죽은 이후에 어디로 가나”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교회는 죽음 이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펴낸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가톨릭 교회의 사말교리」를 토대로 풀어본다.

 

 

죽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인간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 뜻에 따라 실현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의 끝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생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됐다. 인간이 태초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육체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영원한 소멸의 공포를 안겨준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변화시켰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심판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온다. 심판은 죽음 직후 이뤄지는 개별 심판(사심판)과 세상 종말에 있을 최후 심판(공심판)으로 구분된다. 개별 심판은 살아 있던 동안 행실과 믿음에 대한 셈을 치르는 것이다. 그 결과 연옥, 천국, 지옥에 든다. 최후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총체적 심판으로, 심판의 가장 큰 기준은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다. 심판을 통해 하느님 정의와 자비가 함께 이뤄진다.

 

세상 종말에 이뤄지는 육신의 부활은 육체의 생물학적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차원에서의 불사불명성이 우리의 전인적 인격에 주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연옥

 

연옥은 죽은 후의 정화를 뜻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에만 존재하고 개신교에는 없다. 교회는 성경과 교회 전통이 증언하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관습에 의거해 죽은 후의 정화 과정, 즉 연옥의 존재를 인정한다. 연옥은 불완전한 사랑을 하는 인간이 완전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위해 겪는 과정이다. 현세의 삶을 사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죽은 이들의 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확신한다.

 

 

지옥

 

지옥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이들의 운명이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복된 이들과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일컫는다. 지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듯 지옥 역시 이 세상에서 이미 체험할 수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왜 지옥이 존재할까? 지옥은 하느님의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지옥에 대해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회개로의 초대다. 지옥 교리는 하느님 뜻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영원한 단죄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천국

 

천국은 하느님과의 궁극적 만남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린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모든 이들을 천국으로 초대하신다. 천국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됐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성경과 성사,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때 천국의 행복을 지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다.

 

 

이웃 종교와 민간 신앙에서의 죽음

 

그리스도교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면 불교에는 극락이 있다. 극락은 불교 신자들이 죽은 다음 가는 세계 가운데 하나로 해탈 전의 단계다. 부처의 나라 중 서쪽에 있는 극락은 깨달음을 얻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에 이르는 것, 즉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기에 극락이 최종 단계는 아니다. 조건에 따라 극락에 갔다고 해도 윤회를 거쳐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유교에서 죽은 뒤에 사람이 어떤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다는 설명이 담긴 문헌을 찾기는 어렵다. 유교의 여러 경전을 살피면 조상들은 죽은 다음 승천하여 상제를 모시고 자손들을 굽어보며 보살펴 준다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영혼 불멸 신앙은 조상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민간 신앙과 무속에 따르면 인간이 죽으면 그 넋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 하지만 이승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이나 원한을 가지고 죽은 이들의 넋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사람들이 자신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며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른바 귀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 서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죽음에 대해 묵상해야

 

죽음에 대한 교회의 교리를 안다고 해도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부친을 떠나보낸 라파엘(45)씨는 “아버지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끝까지 삶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으셨다”며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섭섭해 하셨다”고 말했다. 라파엘씨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숨이 마지막에 달한 부친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온 한 수도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가족들이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쉬움이 덜 남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어 “평소 죽음과 심판, 지옥과 천국에 대해 깊이 묵상한다면 지상에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일도, 하느님께로 향하는 죽음이라는 과정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일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8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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