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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부님과의 만남은 축복이었습니다

68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4-02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부님과의 만남은 축복이었습니다

 

 

사제들은 보통 자신을 신학교에 추천해준 사제를 ‘아버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나의 아버지 신부님은 이계중(세례자 요한) 신부님입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당시 본당 주임신부님이셨던 이 신부님을 성당 마당에서 뵙고 무작정 “신부님! 신학교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흠칫 놀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신부님은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나를 사제관으로 부르시고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허 신부! 혹시 성모병원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 마침 의무기록실에 근무하는 아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대답을 마치자마자, 신부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부님이 사목하시던 본당의 청년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눈에 질병이 생겼는데, 수술할 돈이 없어 실명할 위험까지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당신이 능력이 모자라 수술비의 반 정도만 부담할 수 있으니, 그 나머지를 한번 알아봐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알겠다는 대답을 드리고 나왔지만, 이제 서품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신부가 어떻게 모자란 수술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며칠 후, 나는 명동 성모병원으로 가 그 직원에게 사정을 전했습니다. 그 직원은 흔쾌히 “제가 아는 의사 선생님에게 한번 알아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잔뜩 의심만 품은 채 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그 직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가능하대요! 마침 병원에서 개안(開眼)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어요. 빨리 그 청년을 입원시켜 주세요!” 나는 이 신부님께 급히 이 소식을 전하고 그 청년이 수술을 받도록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그 직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어요. 그리고 기쁜 소식이 있어요! 병원에서 봉사하는 로터리 클럽에서 그 청년의 사정을 듣고 수술비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이 신부님께 수술비를 내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하늘을 보았습니다. 이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늦은 나이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지금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91세의 나이로 66년간의 사제 생활을 훌륭하게 마치고 주님 품으로

 

그렇게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던 이 신부님은 7년 전, 91세의 나이로 66년 동안의 사제 생활을 훌륭하게 마치시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2013년 3월14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고별사 원고를 들고 사제단 석에서 독서대까지 걸어가는 그 몇 초 남짓의 짧은 순간에 신부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 병원에서 고통스러워하시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고별사 원고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참았습니다.

 

존경하올 이계중 신부님!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만남은 사람의 일생에서 중요한 축복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신부님을 만났던 것은 저희 모두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부님을 ‘무색무취’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나무처럼 강직하고 소나무처럼 항상 같고 부드럽고 유연한 분이셨습니다. 사람을 만나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약점이 눈에 띄고 실망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신부님과의 만남은 그 반대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부님의 고매한 인품에 참으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은퇴 후에는 평생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말씀에서 신부님의 겸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사제로 산다는 것, 참다운 사제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게 느껴집니다. 사제도 약점을 지닌 한 인간이기에 많은 실수와 잘못이 있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로 완전한 사제는 어쩌면 세상에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제들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제에게는 쉽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자세와 높은 이상, 때 묻지 않은 순수가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바로 그것이 세상 유혹의 억센 도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사제란 스스로 가난과 고독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일찍부터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독하게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몸이 편찮으실 때도 지인들의 방문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부님은 항상 혼자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혼자임에도 늘 넉넉하고 여유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부님의 마음속에 늘 주님을 담고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신부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미리 떠난 동창신부님들과 만나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다시 한 번 신부님과의 만남이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저희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신부님.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신부님의 장례 상본을 보았습니다. 상본 뒤에는 신부님께서 걸어오신 길이 요약되어 있었습니다. 글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1922. 1. 27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 출생 / 1946. 11.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졸업 / 1946. 11. 21 사제수품 / 1946. 11. 중림동 약현성당 보좌 / 1947. 8. 소신학교 교사 / 1949. 9. 양평성당 주임(현 수원교구) / 1951. 2. 군종 / 1952. 9. 명동성당 보좌 / 1955. 4. 종로성당 주임 / 1965. 4. 명동성당 주임 / 1968. 6. 혜화동성당 주임 / 1973. 5. 세종로성당 주임 / 1977. 9. 신당동성당 주임 / 1982. 9. 수유동성당 주임 / 1986. 3. 7 원로사목자 / 2013. 3. 12 선종

 

한 사람의 인생이 작은 상본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한 사제가 걸은 평생의 길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 행간에 얼마나 많은 희노애락의 삶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목에 메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신부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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