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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0년 1월 21일 (화)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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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나

64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2

[레지오 영성]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나’

 

 

소위 ‘스타’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정말로 화려해 보입니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에 물질적인 풍요까지 누리게 됩니다.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요. 그래서 요즘 어린 아이들의 꿈이 ‘연예인, 스타’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고 꿈을 이룬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타들 중에서 갑자기 공황장애가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애정과잉이 넘쳐나는 삶일 것 같은데 이들이 공황장애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음을 유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자기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닌, 보여주기 위해 다른 ‘나’를 계속해서 꾸며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받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는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억압, 스트레스가 되고 맙니다. 이때 공황장애가 옵니다.

 

이 공황장애는 물리적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는 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죽을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으면서 삶에 손을 놓게 만드는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의학자들이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스타’라는 호칭을 받는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랑만을 받으려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지 못하면서 보여주기 위한 삶만을 살아가려 한다면 누구나 이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진짜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며, 더불어 자신감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두려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때는 내 자신이 더 실력과 능력 키워야 할 때

 

저 역시 그런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싫어했던 은사 신부님이 있었지요. 이 신부님은 공부 잘하는 신학생만 편애하는 느낌을 많이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던 저는 이런 모습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하게 되었고 심지어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부님께서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신학생들을 뽑아서 교회의 큰 일꾼을 만들려는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류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너무 평범했던, 아니 너무나 부족했던 모습이었기에 신부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벌써 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인 마음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몇 달 전에 이 신부님의 본당에서 저를 초대해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강 전에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당신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잘 모르시더군요. 그런데 제 칭찬을 너무나 많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묵상 글이 좋다, 강의를 잘 한다, 성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등등….

 

그 순간, 신부님을 미워했던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비로소 깨닫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때는 내 자신이 더 실력과 능력을 키워야 할 때임을… 누군가에게 단순히 잘 보이기 위한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자신을 뛰어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보다 몇 배로 재산을 증식시키는 것, 지금의 자리보다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자신의 성과를 올리는 것 등의 세상에서 보기에 크고 위대한 것을 해야지만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단한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만족과 기쁨을 체험하지 않습니다. 소소한 일상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자그마한 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자 모리스 로젠버그가 말하는 자존감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호의적이거나 비판적 태도, 계급장 다 떼고 소위 ‘스펙’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곧 자존감이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서도 스스로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삶, 별 것 아닌 것에서도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칭찬과 감사, 공감의 말은 상대방의 호감 얻을 수 있어

 

주님께서는 세상의 입맛에 맞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남들에게 사랑만을 받는, 인정받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사랑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주는 것이 더 많아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주는 사랑을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남에게 베풀 수 있을까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대단한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약 1천 쌍의 남녀를 대상으로 데이트를 할 때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데이트 이후 서로에 대한 호감도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우선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짧은 시간 동안 호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축하해요. 정말 잘 되었네요.”, “만나게 되어서 정말로 감사해요.” 등의 칭찬과 감사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감의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제가 커피 한 잔 살게요.”, “가족 돌보느라, 일하느라 얼마나 힘드실까요?” 등의 말입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작 4분. 이 4분 동안 하게 되는 칭찬과 감사의 말, 그리고 공감의 말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충분히 줄 수가 있으며 이 호감을 받은 사람을 통해 우리 역시 지금의 내 자신을 뛰어넘는 또 다른 만족스러운 나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이 힘들 것 같지만, 아주 적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푸는 사랑을 통해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어, 새로운 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나’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지금의 삶이 훨씬 더 신나지 않을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8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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