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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19년 9월 18일 (수)연중 제24주간 수요일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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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약력, 그 짧고도 긴 이야기

62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3-05

[허영엽 신부의 ‘나눔’] 약력, 그 짧고도 긴 이야기

 

 

교구에서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미사를 봉헌하게 되면, 고별식에서 돌아가신 분의 약력을 소개합니다. 약력은 한 사람의 일생을 요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선종하신 신부님의 상본 뒷장에 실린 약력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이 살아온 한 평생의 삶을 어떻게 몇 줄로 다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대교구는 관례에 따라 홍보담당 사제가 선종 사제의 장례미사 중 고별식에서 약력을 소개합니다. 제가 이 임무를 맡게 된 이후 많은 신부님이 선종하셨고, 그만큼의 고별식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약력을 읽을 때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단 몇 줄로 읽어버리고 마는 것이 늘 죄송스러웠습니다. 세상을 떠난 어느 젊은 신부님은 단 두 줄의 약력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상본 한 면이 차고 넘칠 만큼의 긴 약력을 지니셨던 신부님도 있었습니다. 또한 고별식의 약력 소개는 “00월 00일 선종하셨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삶이 마감된다는 것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특히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님의 고별식에서 약력을 읽으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도 선합니다.

 

 

사랑이 넘치시던 장홍선 요셉 신부님

 

얼마 전, 서울대교구 소속 원로사목사제이셨던 장홍선(요셉, 81세, 67년 서품)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저는 장례미사 고별식에서 그분의 약력을 발표했습니다.

 

1939. 12. 3 황해도 장연 출생 / 1967. 12. 12 사제수품 / 1967. 12. 종로본당 보좌 / 1970. 1. 아현동본당 보좌 / 1971. 1. 교도소 사목(현, 사회교정사목위원회) / 1972. 6. 군종 / 1977. 1. 미아동(현, 길음동)본당 주임 / 1980. 5. 휴양 / 1980. 7. 대방동본당 보좌 / 1981. 3. 영등포동본당 주임 / 1984. 2.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대신학교) 사무처장 / 1987. 2. 묵동본당 주임 / 1992. 10. 도림동본당 주임 / 1997. 10. 이태원본당 주임 / 2000. 9. 제2지구(현, 제2 서대문-마포지구) 지구장 겸 연희동본당 주임 / 2005. 9. 원로사목사제 / 2019. 1. 19.선종

 

이 날도 약력 낭독의 마지막 문장이었던 “… 1월 19일에 선종하셨습니다.”를 읽으면서 제 목소리가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니 장 신부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저에게 “수고했어, 고마워. 허 신부”라고 말하시는 듯 했습니다. 사실 장 신부님과 자주 만나거나 마음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꼭 오래 만나야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마디만 나누어도 그 분의 인격을 알 수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 신부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장 신부님은 어린 나이에 한국 전쟁을 겪으시고, 황해도 장연에서 홀로 내려오셨습니다. 가까운 친척이 없어 늘 외롭고 고독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외로움과는 달리,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장 신부님은 차가 막히는 서울에서 기동력 있게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오토바이를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본당 구역 내 골목을 빨리 다닐 수 있고, 봉성체도 여러 번 더 할 수 있다고 뿌듯해 하셨습니다.

 

또한 후배 사제들에게도 애정이 많으셨습니다. 연희동성당에서 지구장으로 사목하실 때에는, 아침 미사 후 오토바이를 타고 구역 내 본당 신부님들을 찾아가 환담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군종 신부로 사목하셨을 때에도 훈련 중인 까마득한 후배 사제들을 데려다 미사를 봉헌해주시고, 먹을 것을 준비해 주린 배를 채워주곤 하셨습니다. 이렇듯 신부님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의 모범 보여 주셔

 

한 선배 신부님이 장 신부님을 이렇게 회고하셨습니다. “장 신부님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흙속에 묻혀 있는 보물 같아. 어떤 사람들은 장 신부님을 ‘무색무취’한 분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대나무처럼 강직하고 소나무처럼 항상 변함없고, 느티나무 가지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분이셨어. 아주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면 알수록 깊은 영성과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제 중의 사제였지.”

 

이러한 장 신부님의 사랑과 인품은 약력 몇 줄로 전할 수 없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후배 사제로서 이런 선배 사제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은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장 신부님의 장례미사는 더욱 더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좀 더 우리 곁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선종하신 신부님들의 상본을 다시 한 번 찾아 찬찬히 살펴봅니다. 짧고도 긴 약력 안에 수많은 희로애락의 사연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남기고 가신 사랑, 그 사랑을 받았던 우리의 몫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주님, 사제 장 요셉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 분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3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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