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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19년 8월 24일 (토)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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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전례]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성체성사, 파스카 신비의 원천이자 정점

190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4-21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성체성사, 파스카 신비의 원천이자 정점

 

 

제대와 감실의 싸움(?)

 

「제대와 감실의 싸움」. 고 김인영 유스티노 신부가 분도출판사에서 전례에 관해 낸 소책자의 제목이다. 감실에 모셔진 성체께 지극한 존경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상대적으로 성찬례의 중심인 제대와 말씀 전례의 중심인 독서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적은 것이 문제”라는 말을 그는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체성사가 우리 신앙의 중심이라고 말하면서도, 공동체의 성찬례 거행보다는 성체 조배에서 예수님과 하나되고자 더욱 애쓰는 신앙인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말씀을 실천하기보다 는 성체 조배를 더 좋아하고, 행동하는 신앙보다는 미사 참석의 의무를 더 강조할 것 같다.

 

성체 신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중세 시대라면, ‘죄인인 내가 어찌 성체를 모시겠나?’라며 영성체는 일 년에 겨우 한 번 주님 부활 대축일에 할 것이다. 또 일 년 열두 달 성체 공경으로 만족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왜곡된 신심을 가지고 미사와 성체조배에 열심일 것 같다.

 

 

성체성사의 본뜻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감실의 위치가 성당의 중심인 제대와 떨어져 “성당의 한 부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참으로 고상하고 잘 드러나고 잘 보이면서도 아름답게 꾸민 곳에, 또한 기도하기에 알맞은 곳에 마련해야 한다.”(314항)고 감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강조하는 표현도 잊지 않는다. 사실 지극한 성체 신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체성사의 의미를 오직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에서만 찾는 것이 문제다.

 

성체성사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聖變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체와 성혈로 드러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 즉 파스카 신비에 있다”(「제대와 감실의 싸움」, 187쪽).

 

우리는 제대에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바치고자 결심한다. 성찬례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실 때마다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시키는 것, 여기에 성체성사의 본뜻이 있다.

 

 

파스카 잔치

 

1세기 이래 성찬례를 가리켜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라고 불렀다. 감사행위란 뜻의 이 단어는 성체성사가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만찬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신약 성경에서 성체성사를 가리키는 가장 오래된 표현도 식사와 관련된 ‘빵의 쪼갬’ 또는 ‘주님의 만찬’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기원이 희생 제사이기 이전에 일차적으로는 ‘전례적인 식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일반적인 식사가 아니었다. 구세사에 “단 한 번”(히브 10,10) 일어났던 사건에 ‘지금 여기서’ 참여하려는 데 필요한 식사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려고 당신의 몸을 “단 한 번” 희생 제물로 바치신 파스카 사건을 기억하며, 그분의 몸을 통하여, 그분의 몸과 함께,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의 몸을 먹고 그분의 몸과 하나 되는 아주 신비로운 식사 전례였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심

 

성찬례에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영성체는 “현재 거행되는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5항)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영성체에 참여”함으로써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는(1코린 10,17 참조) 사실을 드러낸다”(83항).

 

파스카 잔치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고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된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2003년 회칙 제목)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로마 미사 경본」의 감사 기도 제2양식에서 사제는 성찬 제정문을 반복하고 “신앙의 신비여!” 하고 외친 다음 성찬례 거행의 목적을 이렇게 요약하여 기도한다.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

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이 기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찬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는 ‘파스카 잔치’라는 것이다. 둘째, 사제 혼자서 봉헌하는 게 아니라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는, 곧 공동체의 감사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 성령께서 영성체에 참여한 이들을 모두 한 몸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성체성사 거행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참된 몸인 교회를 자라나게 한다.

 

 

생명의 잔치 밥

 

‘성찬례에서 축성된 빵도 분명히 그리스도의 참된 몸이고, 거룩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실제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다.’(전례 헌장, 2항 참조)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만찬이 아니라면, 그것은 요즘말로 나 홀로 먹는 ‘혼밥’과 같다. 주님의 몸을 남들 모실 때 함께 모시지 않고 오랫동안 조배한 뒤 따로 혼자서 모시면, 그 밥은 ‘찬밥’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성찬례를 거행하는 ‘지금’ 나누어 먹으면,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천상의 양식이 아니라 ‘여기’ 지상에서 가난한 이들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먹는 ‘더운밥’이 되고, 함께 먹는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잔치 밥’이 된다.

 

 

참여하는 만큼 보인다, 파스카 신비!

 

성찬례는 신자들의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전례 헌장, 14항)를 요구한다. 형제들과 모여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며 평화를 빌어 주는 참여 속에서만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의 현재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능동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에 성체성사는 파스카 신비의 원천이자 정점이요, 나아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동안,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또한 특히 성체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기”(전례 헌장, 7항) 때문이다.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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