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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7일 (수)부활 제3주간 수요일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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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누가 누구를 돌보는가

100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7-14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 누가 누구를 돌보는가

 

 

환갑을 갓 넘은 체칠리아 자매는 모든 일에서 친절하고 항상 웃으며 언제나 타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이 자매의 인생철학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은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 세상에 백배 천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체칠리아 자매는 직장에서 일할 때나 성당에서 봉사할 때, 항상 주변 사람들을 챙겨왔으며 자신이 움직여 사람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돈을 꾸어달라는 지인에게 자신에게 여유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라도 상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성당 봉사자들과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때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먼저 나서서 값을 치르곤 하였다.

 

그렇다고 성당 봉사자들이 다 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부님이 알아주는 일이나 생색을 낼만한 일은 앞을 다투어 그 일을 맡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일, 혹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은 항상 핑계를 대며 회피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봉사는 항상 체칠리아 자매의 몫이었다. 자신이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상했지만, 곧 불만을 내려놓고 자신을 다독였다. 희생 없는 봉사는 하느님께서 즐기지 않으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불만을 감사로 승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체칠리아 자매는 갑자기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울분이 밀려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봉사는 물론 미사도 참여하기 어려웠으며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충분히 청할 수도 없었다. 정신적이며 신체적인 모든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봉사의 삶을 살았고 남에게 조그만 상처도 주지 않으려 노력한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을 혼자 되뇌는 자신을 바라보며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 이르다 보니 자신이 정말 정신적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영적으로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체칠리아 자매는 그동안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볼 만한 감정을 인생의 60갑자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이런 비슷한 감정으로 괴로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부정적 감정을 많이 억압하고 회피해 왔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늘 좋은 모습이었던 자신 안에서 부정적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복음 말씀대로 타인을 우선으로 배려하며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결과가 우울과 분노 그리고 무기력함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복음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기쁨과 평화만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복음적인 삶이 우울이나 분노처럼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는 더더구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체칠리아 자매는 자신의 삶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진정한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한 물음을 제기했다.

 

과연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는 삶이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다면 그러한 이타적인 삶은 자신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체칠리아 자매는 ‘모든 이’를 위한 삶을 산다고 했지만 정작 그 모든 이 안에 ‘자신’은 빠져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되어줄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면, 결국 자신도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 되어줄 수 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라틴어 격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Nemo dat quod non habet)’는 말이 있다. 타인을 위한 진정한 사랑은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는 체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체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진정한 마음과 의지가 중요한 사랑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돌봄과 사랑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랑과 구별된다는 설명을 구차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식별이 어렵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신앙인들이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2월 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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