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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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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 세속과 복음의 기쁨

139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22

[경향 돋보기 -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 세속과 복음의 기쁨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재임하던 어느 겨울 방학 경남 고성의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서 일주일 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30여 명의 수녀님들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오전과 오후에 몇 시간씩 세계 교회사 강의를 수강했다. 사실 처음에는 수녀님들이 봉쇄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니 혼자인 내가 갇힌 사람 같았다.

 

봉쇄 수도자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이때 완전히 깨어졌다. 엄격한 생활 규칙과 기도 생활로 말미암은 조용하고 진지한 표정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와 전혀 달리 너무도 밝고 명랑한 모습을 날마다 보게 되어 놀랐다. 그때 나는 하느님 안에서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고 규칙 생활을 통해 깊은 영적 체험을 할수록 더욱더 자유로워지고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글에서는 세속과 복음이 주는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먼저 세속이 주는 즐거움에 ‘올인’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교회사에서 회개를 통해 복음의 기쁨을 찾은 성인들을 찾아 보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모범을 따라야 할 당위성도 고찰한다.

 

 

세속이 주는 즐거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현실은 탐욕스러운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을 부추기는 소비주의, 그리고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힌 개인주의이다. 이러한 경향은 ‘웰빙’이란 구호에 편승해서 인간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진 자들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희생시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제2장 ‘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 이를 언급한다. 곧,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 가진 자들은 없는 자들을 배척하고 돈을 우상처럼 숭배하여 비윤리적 금융 투기가 성행한다.

 

쾌락과 탐욕의 부산물로 중독 현상이 나타난다. 알코올, 도박, 마약을 넘어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소비 중독 등 그 대상이 확대되었고 개인과 사회에 큰 피해를 초래하는 실정이다.

 

영적, 정신적 측면에까지 스며드는 세속적 만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빚은 영적 공허와 막연한 불안감, 소외감 등을 채우고자 다양한 신흥 종교나 유사 영성 운동이 확산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는 주장(범신론, 신과 인간을 동등한 지위로 보는 인간관, 신을 영혼이나 정신과 동일시하는 우주론, 인간의 수련만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구원관 등)이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방식의 개인적 각성과 의식 변용, 영적 진화와 인간 완성을 추구하는 각종 운동이 출몰을 거듭한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이 지닌 다양한 욕구를 일시적으로 채워 주는 듯 보인다. 예컨대 소속감, 타인의 인정, 영적 충만, 새로운 시대로의 참여와 비전에 대한 욕구이다.

 

그러나 물질의 축적이든 유사 영성 운동이든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내적 공허를 자신에게까지 감추기 위하여 소음과 유흥을 찾지만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다음에서 살펴볼 성인들은 진정 충만한 삶의 모습과 그렇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를 알려 준다.

 

 

회개와 복음의 기쁨

 

1) 고대: 아우구스티노 성인 -성경 말씀은 죄인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가 죄와 타락의 구렁에서 빠져나와 회개했고, 그 큰 은총 속에서 머물렀다. 대표적인 분이 바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다.

 

학업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아우구스티노는 자만에 빠졌고, 곧 타락의 길을 걸었다. 16세에 한 여인과 생활하며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어머니 모니카의 만류에도 명예를 향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마치 죄를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 같았다. 373년경에는 이단인 마니교에도 빠진다. 하지만 그는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 변화를 겪고 마침내 회개의 길로 들어선다.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면서 많은 예비 신자가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개종한 아우구스티노 성인 또한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리 교수법을 고민했는데, 북아프리카의 데오그라시아와 오간 편지는 지난날 이단을 좇던 성인의 변모된 모습을 드러낸다.

 

기쁨에 관한 성인의 생각은 「입문자 교리 교육」(De catechizandis rudibus)에 나타난다. 성인에 따르면 교리 교육자는 자신도 기쁨 속에서 가르쳐야 하고 그 기쁨을 예비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편지에서 성인이 제시하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2코린 9,7)라는 구절은 ‘하느님 사랑’과 ‘주는 이들의 기쁨’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준다.

 

“주님께서 현세의 재물에 대해서도 기쁘게 내주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영적인 재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적절한 때에 이 기쁨이 함께하는 것은 이런 계명을 주신 그분의 자비에 힘입은 것입니다”(「입문자 교리 교육」, 2,4). 성인은 이 기쁨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겸손이라고 결론 내린다.

 

2) 중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매우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향락을 추구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놀기를 즐기며 십대를 보낸 프란치스코는 기사를 꿈꾸며 참전했으나 포로로 잡힌다. 1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고서는 큰 병을 앓는다. 병이 나은 뒤 점점 친구들과 노는 것을 멀리한 프란치스코는 어느 날 스폴레토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 “내 교회를 고쳐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한다.

 

성인은 십자가상 고통과 고난을 통한 기쁨을 강조한다. 그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는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고해 사제로 알려진 레오 형제에게 완전한 기쁨을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그것입니다”(「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8장).

 

또한 성인의 가장 큰 덕목인 청빈도 ‘기쁨에 찬 가난’이 되어야 하고 수사들은 음울하고 슬픈 위선자처럼 보이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쾌활하고 사랑받기에 합당한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본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이 이처럼 정신적 기쁨에 익숙해져 살도록 부름받았다. 늘 기쁨에 찬 자세가 우리 모두의 생활 양식이자 본질적인 특성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활 양식과 본질적인 특성 안에서 완전한 기쁨은 믿음직하게 완성되고 빛나며 사람들을 고무시킨다.

 

3) 근대: 필립보 네리 성인 -로마 교구 사제로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 신부는 유머 감각이 풍부했으며 다정다감한 인품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와 한 번이라도 만났거나 기도 모임에 같이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필립보 네리를 알게 된 그날은 내 인생 가장 축복받은 날’로 기억했다고 한다.

 

피렌체 출신인 성인은 성 베네딕도회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영적 생활에 대한 수도자들의 전념,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철저한 청빈의 삶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로마로 떠났다. 평신도 사도로서 열심히 영성 생활과 사도직 활동을 해 나가던 중 늦깎이로 성소를 발견하고 40세에 서품을 받은 드문 사례이다.

 

“기쁨 없는 덕은 참된 덕이 아닙니다.”라는 성인의 말은 모든 순간을 기쁨의 영성으로 살았을 성인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이 ‘기쁨의 성인’은 완덕이 고고하기만 하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또한 성인의 성공과 가르침의 핵심도 바로 기쁨의 정신이었다. 성모 호칭 기도에서 ‘즐거움의 샘’으로 부르는 마리아는 필립보 네리 성인의 기쁨의 정신을 이루는 중점이 되었다.

 

성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한 ‘세상 안의 교회’라는 가르침을 미리 실천한 예언자로 보인다. 그에게는 교회와 세속이 분리되지 않았고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곧 교회였으며, 하느님 백성을 성덕의 길로 초대하는 중심에 기쁨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거룩한 삶의 길을 걸으려는 그리스도인은 기뻐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먼저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의탁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알맹이가 된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올바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복음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그 기쁨을 전하고 선포해야 한다.

 

위에서 소개한 성인들은 자유분방한 세속의 쾌락이 아니라 넓은 바닷속 물고기와 같이 하느님의 무한한 품에 잠김으로써 참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범은 갈등 속에 놓인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힘을 북돋워 변화에 기여한다.

 

* 전수홍 안드레아 - 부산교구 사제로 오륜대 순교자 성지에서 사목하고 있다.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역사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전수홍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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