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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기쁨의 의미

139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22

[경향 돋보기 -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기쁨의 의미

 

 

왜 기쁨을 말하는가

 

2013년 3월 13일, ‘지구 반대편 저 끝에서’ 온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새 교황으로 선출되자, 사람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일었던 ‘신선한 바람’이 다시금 교회와 세상에 불기를 기대했다.

 

이제까지 겸손과 청빈의 대명사였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한 이가 없었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전해지는 새 교황의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언행이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새로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가톨릭 교회의 창문이 다시 한번 열리고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다만,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움직임은 교회 전통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로 돌아가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 돌아감은 단순히 지난날로의 회귀가 아니라, 신앙의 핵심인 복음의 가치, 곧 자비와 사랑 그리고 기쁨을 다시금 찾고 구한다는 의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유독 ‘기쁨’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그의 첫 번째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EG로 표기)을 시작으로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GE로 표기) 그리고 교황령으로 반포된 「진리의 기쁨」(Veritatis Gaudium)까지, 제목에서부터 기쁨의 주제를 언급하고 그 밖의 다른 문헌도 다루는 내용에 기쁨의 주제가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어가 되었다. 사실 이 단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성 요한 23세 교황의 「어머니이신 교회는 기뻐할지어다」(Gaudet Mater Ecclesia)와 공의회가 폐막한 뒤 반포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 이미 사용된 개념이다.

 

이렇게 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명 교회 전통 안에서 공의회 정신을 이어 가고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고자, 기쁨이라는 주제를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선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기뻐하는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쁨을 한 가지의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분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고 밝히는 ‘그리스도인의 표지’(2014.5.22.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묵상 중)이자 ‘숨결’(2018.5.28.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묵상 중)이라고 정의한다.

 

교황에게 그리스도인이란 ‘기뻐하는 사람’이며, 절대로 ‘비관주의자’나 ‘슬퍼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2013.7.24. 리우 세계 청년 대회 중 아파레시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한 강론). 물론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인간적 어려움과 고통의 무거움을 경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그리스도인은 늘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며 그 방법을 여러 문헌과 연설로써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써 체험한다(EG, 1-7; 264-267항 참조). 교황은 누구나 예수님을 찾고, 만나려는 열정과 노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당장 즐거움 속에서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쁨은 단순한 재미나 부와 재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비로소 얻는 체험이기 때문이다(2013.3.24.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제28차 청소년 주일 강론; EG, 7항 참조).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또는 누구의 얼굴에서든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는 하느님의 친근함과 온유함 그리고 한없는 자비를 직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EG, 1항)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기쁨은 자신이 주님께 사랑받고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에서 온다(EG, 6, 12항; GE, 125항 참조). 바꾸어 말해 주님이 우리를 무척 사랑하고 용서하며 구원하시려 한다는 사실을 느낀다면,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불타오를 것이다(리우 세계 청년 대회 중 아파레시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한 강론 참조).

 

사실 주님의 용서와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거나 공로나 노력을 쌓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께서 당신의 조건 없고 끝없는 사랑으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은 비록 인간이 그의 잘못과 결점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절망 그리고 낙담에 빠질 수 있으나,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고 구원되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할 수 있다면 반드시 기쁨으로 차오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 CV로 표기), 112-123항 참조).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EG, 265항) 있기 때문이다.

 

셋째, 희망을 통해서 기쁨을 얻는다. 교황은 누구든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기쁨을 찾고 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산모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서도 아기를 낳는 기쁨으로 그것을 잊는다(요한 16,21 참조).

 

희망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넘어 새로운 열매의 기쁨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황은 기쁨 없는 희망이 존재할 수 없고 동시에 희망이 없는 기쁨은 단순한 재미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며, 기쁨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2016.5.6.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묵상 참조).

 

사실 그는 많은 연설의 끝맺음을 “여러분이 희망을 도둑맞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라는 말로 갈무리한다. 이는 누군가가 주님을 향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기만 하다면, 주님께서는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언제나 기쁨을 되찾아 고개를 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리라는 교황 자신의 깊은 신뢰의 표지라 하겠다(EG, 3항; CV, 119항 참조).

 

넷째, 복음적 삶을 실천함으로써 기쁨을 느낀다(GE, 67-94항 참조).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살도록 부름받았는데, 이 소명을 성취하려면 삶으로 복음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서라 해도 좋을 예수님의 행복 선언(마태 5,3-12)의 말씀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안에서 거룩함과 행복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교황은 가난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행복 선언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 또한 “고통 중의 인내, 정의에 대한 사랑, 박해를 견디는 역량”(2019.1.21.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묵상 중)등의 거룩한 삶의 실천을 통해 참행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GE, 109항 참조).

 

 

‘함께 나누는’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뒤 맞은 첫 전교 주일에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받는 기쁨, 구원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혼자만 간직할 수 없고 나누어야 하는 선물입니다”(2013.10.20. 삼종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기쁨은 실로, 혼자서 덧없는 안락함 속에서 느끼는 ‘고립된’ 기쁨이 아니라 공동체의 친교와 형제애 안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이다(GE, 128항 참조).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이다(EG, 14항).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신앙생활에서 참기쁨을 얻었다면 그 기쁨은 당연히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나누어 더욱 크게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으로 교회가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병들어 있을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아울러 “고해소가 고문실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를 만나는 장소가 되어”(EG, 44항) 모든 이가 복음과 선교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교황은 자신의 첫 번째 문헌이자 교황직 수행의 로드맵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기쁨」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로 수차례에 걸쳐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가 외친,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교 열정’(80, 109항), ‘복음화의 기쁨’(83항), ‘희망’(86항), ‘공동체’(92항), ‘복음’(97항), ‘형제애의 이상’(101항)이 그 도둑맞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이 말을 기억하고 명심해서 ‘선교 열정-복음화의 기쁨-희망-공동체-복음-형제애의 이상’을 우리 안에 잘 간직하고 지켰을 때 우리가 맺을 열매는 무엇일까? 그 열매가 바로 “어느 누구도 또 그 무엇도 우리에게서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EG, 84항)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이다!

 

* 윤태종 토마스 - 전주교구 팔봉성당 주임 신부이다.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의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20년 3월호, 윤태종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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