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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동일시의 심리학, 블랙 팬서

92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4-22

[심리학이 만난 영화] 동일시의 심리학, 블랙 팬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와칸다에는 흑인들만 산다.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흑인에 대해 갖는 고정 관념과 일치하듯 세상 사람들에게는 세계에서 아주 가난한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위장일 뿐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2018년 작 ‘블랙 팬서’의 와칸다는 겉모습은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지만, 실제로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난 문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뤄 낸 곳이다. 이곳에는 지구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브라늄이 있다. 아주 오래전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덕분이다.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그리고 철기 시대로 문명의 수준이 달라졌듯이, 비브라늄은 인류 문명의 차원을 바꿀 수 있는 금속이다. 와칸다는 비브라늄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척추에 총알이 박힌 사람을 하루 만에 온전히 회복시킬 수 있고, 코앞의 빌딩만 한 비행체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착하고 똑똑하며 깨끗한 흑인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블랙 팬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이 보여 주는 세상의 모습이다. ‘블랙 팬서’의 세상에서는 슈퍼히어로의 피부색이 검다. 블랙 팬서와 와칸다로 대변되는 이 영화의 흑인들은 착하고, 똑똑하며, 깨끗하다. 인류 최고로 번성한 문명과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간적인 이 흑인들은 근본적으로 선하다.

 

그 반면, 율리시스 클로로 대변되는 백인과 백인 문명은 폭력적이고, 악의로 가득 찼다. ‘블랙 팬서’에서만은 백인과 백인 문명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이고, 흑인과 흑인 문명이 세상을 지키려는 선이다.

 

이 모습은, 지구가 위기에 놓이면 늘 백인 슈퍼히어로들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우리에게는 꽤 낯선 풍경이다.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흑인은 폭력적이고, 지적 수준이 떨어졌다. 게다가 지저분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흑인이 ‘블랙 팬서’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다수’다. 출연 배우의 90퍼센트 이상이 흑인이다. 이들은 흑인 특유의 억양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착하고, 똑똑하며, 깨끗하고, 정의롭다.

 

지난날에도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그 주인공만 특별했을 뿐 다른 흑인 출연자들이 맡은 역할은 기존의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과 대부분 일치했다. 기존의 영화는 흑인들 가운데 더러 괜찮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했다.

 

따라서 ‘블랙 팬서’에서 그려 낸 세상은 기존의 영화가 만들어 낸 결과대로 흑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과 편견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 파격적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들

 

우리는 수많은 고정 관념과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학습할 뿐이다. 고정 관념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교육받지만, 정작 사회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를 배우면서 자란다.

 

영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인디언을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우리는 누가 선하고 누가 나쁜지, 누가 똑똑하고 누가 멍청한지, 누가 성실하고 누가 게으른지 배우게 된다.

 

영화는 세상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견을 가르치는 데 중요한 도구다. 특히,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주인공의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 관객은 서부 영화에서 백인 보안관의 시점으로 인디언을, 백인 경찰의 관점으로 흑인 범죄자를 바라본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동안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의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흑인이나 인디언과 아무런 상호 작용의 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백인이 흑인과 인디언에 대해 갖는 고정 관념과 편견을 배우고, 이를 내면화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슬픈 일은 고정 관념과 편견의 피해자가 자신을 겨냥한 부정적 고정 관념과 편견을 배우고 받아들여 스스로를 비난할 때 생긴다.

 

 

인형 연구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피부와 머리색이 다른 인형 네 개가 있다. 갈색 피부에 검은 머리의 인형 두 개와, 흰 피부에 노란 머리의 인형 두 개다. 인형들은 옷은 입지 않은 채 기저귀를 차고 있다. 똑같은 얼굴과 신체의 흑인과 백인 아기 인형이다.

 

사회심리학자인 클라크 부부는 세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의 흑인 어린이들에게 인형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어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은지, 어떤 인형이 착하게 생겼고, 어떤 인형이 나쁜 사람처럼 생겼는지 고르라고 했다.

 

놀랍게도 다수의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착한 인형으로, 흑인 인형을 나쁜 인형으로 선택했다. 같이 놀고 싶은 인형도 백인으로 골랐다. 이 결과는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을 좋은 사람으로,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흑인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클라크 부부는 마지막으로 어떤 인형이 자기 자신(어린이)처럼 생겼는지 고르라고 했다. 아이들은 다수가 흑인 인형을 골랐다. 아이들도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생겼다고 선택한 인형과 자기 피부색이 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힘들어 했다. 심지어는 화를 내며 방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클라크 부부의 연구는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에 수행된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방송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반복 실험한 결과도 이 부부의 발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별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차별의 피해자들까지 자신들은 문제가 있고, 그래서 차별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 살에서 일곱 살 정도의 나이에 벌써 자신에게는 나쁜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게 되면, 과연 그 아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을까?

 

자기의 피부색이 나쁜 사람의 징표이고, 이 징표는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차별의 일상화는 이렇게 아이들의 미래를 아주 이른 시기에 망가뜨린다.

 

 

동일시의 대상

 

낡고 지저분한 빌딩들. 심지어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미국의 빈민가에서 흑인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으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행체가 나타난다. 농구를 멈춘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경외의 시선으로 우주선을 바라본다.

 

‘블랙 팬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와 같은 검은색 피부를 가진 슈퍼히어로. 이제 흑인 아이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검은색 피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존재가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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