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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솔직히 고백한다면(라쇼몽 현상)

68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4-02

[레지오와 마음읽기] 솔직히 고백한다면(라쇼몽 현상)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 선조는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저의를 탐지하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한 적이 있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다녀왔는데 공교롭게도 둘의 보고가 달랐다. 황윤길은 도요토미는 눈에 정기가 빛나며 담략이 있어 보이고 실제로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어 반드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성일은 도요토미가 쥐같이 생겨 전혀 두려워할 것이 못되며 일본이 침략할 낌새는 전혀 없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반신반의하면서 후자의 의견을 따랐고 결국 준비하지 못한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큰 비극을 맞게 된다.

 

역사가들은 김성일이 침략의 가능성을 인식했으면서도 황윤길이 자신과는 다른 정치 세력이었기에 무조건 반대하여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료에서는 그 당시 김성일이 그렇게 한 것은 전쟁 위협에 대한 민심의 지나친 동요를 염려한 결과라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김성일의 보고는 조선의 명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연출하여 이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쇼몽(羅生門)’이라는 흑백영화가 있다. 사무라이 부부가 숲길을 가던 중 산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을 당하고 사무라이는 죽임을 당한다. 이를 목격한 나무꾼이 사건을 신고해 재판이 열리지만 재미있게도 그 사건에 대한 진술이 제각기 달랐다. 산적은 자신이 사무라이를 살해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사무라이 아내의 요구 때문이었다 한다.

 

부인은 산적이 자신을 겁탈하고 사라진 후 남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경멸을 느껴 남편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죽은 사무라이 혼령은 무당의 입을 통하여 겁탈 당한 아내가 강도에게 도망치자고 해서 모욕감에 자살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광경을 숨어서 지켜본 나무꾼은 사무라이 아내가 남편과 강도 모두에게 납자답지 못하다고 모욕하자, 남편이 마지못해 산적과 결투하다 죽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4명 모두는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다.

 

영화감독은 자서전에서 ‘라쇼몽’의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 시나리오는 그런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렸다.” 이처럼 인간은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각자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는 ‘라쇼몽 현상’

 

여기에서 나온 심리학 용어가 바로 ‘라쇼몽 현상’ 이다. 보는 사람마다 자기 처지에 따라 달리 말하는 현상을 일컫는데, 동일한 사건이라도 그것을 각자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체로 우리들은 새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기존의 지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이는 의식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과는 다르다. ‘같은 물을 보고도 보는 이에 따라 4가지 의견이 있다’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사자성어가 라쇼몽 현상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런 현상은 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같은 경제 지표를 보고도 경기가 ‘좋다’와 ‘나쁘다’라는 서로 상반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실에 대한 기억이 친구들끼리라도 서로 다르고, 특히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의 입장에 따라 증언이 다른 경우 등이다.

 

J단장은 활동보고를 받을 때 의견이나 가정(假定), 인용, 상상 등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입단 초기에 동료 단원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 불화가 난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 두 자매가 혼인조당자를 방문하여 활동보고를 했다. 한 단원은 활동대상자가 조당을 풀고 싶은 의도는 있는데 남편의 강한 반대로 못한다고 한데 반해, 함께 갔던 다른 단원은 활동대상자가 성당에 나오고 싶은 의지가 없는데 이를 남편 핑계를 대고 있다고 하였다. 결국 사태를 지켜보자는 쪽이었는데 몇 번의 방문 이후 무슨 이유인지 활동대상자가 방문을 강하게 거부하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결과를 두고 초기 방문자였던 두 단원이 서로 상대를 탓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중 한 명이 탈단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J단장은 말한다. “저는 그 당시 Pr. 단장님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면서 단원들을 다독거리지 않으신 게 아쉬워요. 의견이 다른 것은 서로의 해석이나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지, 상대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사실만을 챙겨서 판단을 하였다면 달라졌을 거 같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과를 두고 서로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성모님의 군사답지 못한 저희들의 큰 실수였습니다. 단원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활동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소통에 힘쓰는 것이 일치를 위한 길

 

“혼자보다는 둘이 나으니 –중략-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으켜 준다.”(코헬렛 4, 9~10)는 말이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둘씩 보내셨다. 이에 레지오에서는 방문 활동을 할 때 두 명이 함께 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는 단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칠 수 있으며, 활동에 관한 규율을 지키도록 해주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교본 433~434쪽 참고)

 

그런데 이때 주의할 점은 “함께 활동에 나서는 단원들 사이의 관계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일치를 보일 때 올바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교본 297쪽)는 것이다. 이는 “레지오 안에서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면서 바깥세상의 대립 위에 다리를 놓아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교본 457쪽)라는 뜻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일을 설명할 때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게 된다. 특히 나의 잘못을 감추고 싶을 때는 최대한 피해를 과장하며 남의 탓으로 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어진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명이나 구실을 찾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여 자칫 사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치에 치명적이다. 잦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을 넘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이야기가 다를 경우에는, 상대나 나나 자신도 모르게 왜곡되는 기억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며, 좀 더 부드럽고 솔직하게 소통함으로써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튼튼한 기초가 되어 대화를 돕게 된다.”(교본 371쪽)는 말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기억의 왜곡뿐만 아니라 보는 것 또한 정확하고 완전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기억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소통에 더욱 힘쓰는 것이 일치를 위한 길이라고 할 것이다.

 

‘둘’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함께 일을 하게 된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요나단의 영혼처럼 일치된 하나를 나타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자신의 영혼처럼 사랑했다.(1사무 18, 1 참조)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4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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