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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4일 (수)부활 제4주간 수요일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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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20: 천천히 읽음

135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29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0) 천천히 읽음


천천히 하느님 말씀의 의미 음미하며

 

 

현대의 영성가 중의 한 분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트라피스트 수도승 마이클 캐시(Michael Cas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경 독서는 마치 시집을 읽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성경 본문을 천천히 읽고, 우리가 읽은 것을 맛보고, 그 본문을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길 필요가 있다.” 즉 성경을 재빨리 읽지 말고 천천히 소리 내어 시집을 읽듯이,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음미하며 읽으라는 권고이다.

 

독서학에서는 색독(色讀)과 체독(體讀)을 구분한다. ‘색독’이란 표현된 글의 문자적 의미만 읽는 것을 말하지만, ‘체독’은 표현된 것 이상의 내포적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며 읽는 것을 말한다. 즉 책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천천히 올바르게 읽고, 또한 온몸으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도 전통에서 전해준 렉시오 디비나에서의 독서는 바로 이렇게 꼼꼼히 온몸과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체독(體讀)의 경지를 말한다.

 

체독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독서할 때 천천히 글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사실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자의든 타의든 빨리빨리 움직여지고 있으며,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빨리! 빨리!” 문화에 휘둘려 들어가게 된다. 인간에게는 생체리듬이 있다. 걷는 것이나 먹는 것을 평상시와 달리 빨리하게 되면 신체 기관이 즉시 거부 반응을 보여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빨리 읽는 것은 그렇지가 않아서 막을 수가 없다. 책을 재빨리 읽는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갈 때의 묘한 힘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은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점은 반드시 성현의 말씀과 행동을 마음으로 읽되 푹 잠겨 그 참뜻을 구해야 한다. 설렁설렁 넘어가고 벙벙하게 외울 따름이라면 귀로 듣고 입으로 옮기는 쓸데없는 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수백 편의 글을 다 외우고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경전을 본다 한들 뭐가 대수일까?”

 

그러므로 참으로 책을 잘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책을 향락하거나 스스로 배우기 위해서도 또 그것을 비평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이렇게 천천히 읽다 보면 가끔 1년에 한 두어 번이라도 문득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때가 있다. 비록 1년 365일 가운데 그런 기쁨이 찾아오는 일은 단 몇 분이나 몇 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빨리빨리 건너뛰면서 읽는다면 단 몇 분, 몇 초의 그 기쁨조차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바쁜 일상 속에서 천천히 책을 읽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포도 한 알의 싱싱한 맛을 제대로 맛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먹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것을 재빨리 씹어서 삼켜버리면 포도 한 알의 충만한 맛을 제대로 맛볼 수가 없다. 이처럼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도 책 자체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참된 맛을 한껏 맛볼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고대 수도자들의 독특한 독서의 방법은 성경의 참된 맛을 어떻게 맛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던져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일,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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