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가톨릭문화

sub_menu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성지를 찾아서: 가톨릭 - 일본 운젠

165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7-06-23

[성지를 찾아서] 가톨릭 - 일본 운젠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자연을 고문에 이용하는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일본 규슈지방 시마바라 반도의 운젠지고쿠(雲仙地獄)는 지금보다 더 왕성한 천주교세를 자랑했던 17세기 초(1629년) 일본 ‘기리시탄’(크리스천)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순순하게 피를 뿌리며 숨져간 순교성지이다.

 

 

“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

 

규슈지방 나가사키현 ‘운젠’은 뱃부 아소와 함께 온천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온천 휴양지’라는 명성의 이면에는 신앙으로 인해 박해를 받으면서 구차하게 육신의 삶을 연장하기를 포기하고, 하늘 아버지께 영혼을 맡긴 피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필자가 찾아간 지난 10일 오전 운젠지고쿠는 쏟아지는 비 탓인지 사방은 진한 회색빛으로 가라앉고 뜨거운 열기와 심한 유황 냄새를 실은 증기가 차올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젠지옥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에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탕 온천에 익혀서 팔고 있는 계란과 사이다는 그저 신기한 먹을거리일 뿐이다. 계란이 삶길 정도로 뜨거운 물로 고문당하며 배교와 순교의 갈림길에서 순교를 택한 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그저 운젠지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있는 ‘크리스천 순교비’라는 안내석과 십자가만이 역사적인 순교 현장이었음을 희미하게 말해줄 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탄압 시작

 

요즘 운젠은 한국 가톨릭신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순교성지 가운데 한 곳이다. 아비규환이라는 뜻의 다이쿄칸(大叫喚)지고쿠, 팔만번뇌에 시달리는 인간이 가게 되는 지옥을 뜻하는 하치만(八萬)지고쿠, 오이토지고쿠 등 30여개의 열탕으로 이뤄진 운젠지옥에서 일본 가톨릭 초기의 성직자와 신자들은 배교를 강요받았다. 천주교에 대해 호의적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통일 직전 내부 배반으로 목숨을 잃은 뒤 세력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탄압의 칼을 들이댔다. 박해 직전, 일본 가톨릭은 일찍 개항한 무역항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75만 신자를 지녔었다. 조선의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1784년보다 235년 이른 1549년 8월 15일 가고시마에 상륙한 일본의 첫 신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성인)는 성령에 의존, 신에 대한 경건함과 자유 평등을 존중하는 인품으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순풍에 돛을 단 듯 늘어나는 교세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려워하며 1587년 금교령을 내렸다.

 

 

지옥형벌에서 26명 순교

 

맨 먼저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의 니시사카에서 26명(1862년 시성)이 화형당했다. 도요토미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1614년 1월 27일 재금교령을 내려 1633년까지 박해를 지속했다. 도쿄 나가사키 교토 등지에서도 순교자가 속출했다. 운젠에서도 이 시기에 순교자가 나왔다. 도쿠가와 막부의 직속령인 나가사키에 파견된 부교(관리) 다카나카 우네메는 신자들을 배교시키기 위해 시마바라 영주이던 마츠구라 시게마사와 그 아들 가쯔이에가 개발해낸 지고쿠세메(지옥형벌)를 동원했다. 지고쿠세메는 지옥같이 뜨거운 운젠온천의 열탕을 이용하여 갖가지로 고문하는 형벌이다. 시마바라 26위 순교기념관에서 발간한 ‘순교자의 길을 가다’라는 책에 따르면 1627년 2월 28일 바울로 등 16명, 그해 5월 17일 조징 미네 등 10명이 순교한 것으로 돼있다. 1천 명의 신자가 끌려와 26명이 순교했다고 하는 한국천주교계에서 알고 있는 사실과 부합되는 얘기다.

 

 

제가 진 십자가에 구원을…

 

끌려온 신자들은 로프에 매달린 채 지옥열탕에 빠트려졌다가 건져올려졌다가를 반복적으로 당했다. 고문관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순교자 가운데 조징 미네는 아무리 지고쿠세메를 가해도 작은 소리를 지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노한 관리들은 조징 미네의 몸을 칼로 찔러 수십 군데나 상처를 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에 열탕을 끼얹으며 가톨릭을 버리라고 강요했다. 무서운 기세로 끓어오르는 열탕은 보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다. 끓는 물을 뒤집어쓰면서 신자들은 기도했다.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괴로워하는 자를 일으켜세우고, 지친 자를 안고 가는 사랑의 하느님, 한시바삐 저의 십자가 위에 순교의 은총을 내려주세요.” 침묵하는 하느님의 뜻을 순교자들은 알고 있었다. 상처입은 새들도 날게하는 주님이 곧 구원의 날개를 펴주리라 믿으며 고문에 이겨나갔다.

 

 

조선 여인 이사벨라의 용기

 

임란 때 끌려온 조선 여인 이사벨라 역시 기도의 힘으로 지옥형벌을 이겨냈다. “오직 천주님이 명하신 것만 따른다.”며 온갖 고문을 견뎌내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열탕이 맹렬하게 끓더니 사방으로 튀기 시작하자 박해자들은 무서워서 도망갔다. 다음날 이사벨라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고, 몸에는 큰 돌이 매달린 채 머리 위에 큰 돌을 들고 있으라는 형벌이 가해졌다. 배교를 시키려는 이들은 “돌을 떨어뜨리면 그리스도교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으나 이사벨라는 결코 돌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열탕고문도, 돌고문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10년, 20년 계속 고문하겠다.” 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이사벨라는 “주님의 뜻이라면 평생이라도 고문당하겠다.”며 맞섰다. 도저히 배교시키지 못하자 그들은 이사벨라를 나가사키로 끌고갔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그 옛날, 죽음을 불사하고 신앙을 지켰던 순교 현장인 운젠은 일본의 유명한 온천관광지로서 몸의 피로를 풀어줄 뿐 아니라 현대인의 메마른 영혼까지 씻어주는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시마바라난 - 영주 압정에 농민 4만여명 봉기...모두 전몰

 

시마바라난은 운젠에서 신자들이 순교한 지 십년 후인 1637년 시마바라(島原)와 아마쿠사(天草)에서 발발한 농민 봉기이다. 시마바라의 난은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 강화와 천주교 금지령이 내린 가운데, 이곳 영주로 마쯔구라 시게마사가 파견되면서 비롯됐다. 마쯔구라 시게마사와 그 아들은 중과세로 압정을 일삼을 뿐 아니라 천주교인들을 붙들어 물고문, 불고문, 손톱고문, 매달기, 유황고문, 바늘고문 등 잔인한 탄압을 자행했다. 마쯔구라 시게마사는 끓는 온천물로 형벌을 가하는 지고쿠세메(地獄責)를 고안, 운젠에서 많은 순교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편 122개 섬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아마쿠사는 임란 때 끌려온 조선도공들이 살던 곳으로 이곳 영주 코니시 유키나가와 관내 2만 여명 모두 천주교 신자였다. 1637년 영주가 바뀌면서 과도한 조세 수탈과 기근에 시달리게 되자 농민들이 시마바라농민들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현재 일본 고고학자들이 발굴 중인 하라성 유적지에서 십자가를 목에 건 유골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가렴주구와 혹정 그리고 탄압을 견디다 못한 농민 3만 7천여 명은 아마쿠사 시로도키사다(天草四郞時貞)의 지휘로 1637년 봉기하여 12만 관군과 5개월간 대치하다가 전몰했다. 시마바라난 이후 일본 가톨릭의 공식 조직은 사라졌고, 250년 동안 성직자가 없는 잠복기가 이어졌다. 1865년 외국인을 위해서 지어진 오우라(大浦) 성당에서 1865년 가꾸레 기리시탄(숨어있던 크리스천)이 신앙고백을 하면서 ‘신자재발견’이 이뤄졌고, 1889년 종교의 자유가 이뤄졌다.   하지만 일본의 교세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전교를 하던 당시보다 줄어들어 40만~50만에 그친다.

 

 

운젠지코구 40분 정도면 돌아봐

 

한때 운젠은 일본 가톨릭 신자, 즉 기리시탄들의 무덤이었다. 이곳에서 숨진 16명의 기리시탄들은 마지막 순간 겟쎄마니 동산의 그리스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 우리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너무 지쳤고, 이 십자가는 제게 너무 무겁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깊은 세계이지 않은가. 순수하게 믿음을 따라 영혼을 하늘 아버지께 맡긴 기리시탄들은 폼페이를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만든 베수비오스 활화산처럼 뜨거운 유황 열탕을 내뿜는 운젠지고쿠에서 숨져갔다. 기리시탄들이 숨져간 지옥이 현대인들의 신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최고의 성지로 바뀌었다.  이 일대를 돌아보려면 40분 내외 소요된다. 미리 운젠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운젠공원비지터센터(001-82-957-73-3636)나 운젠관광협회(001-82-957-73-3434)로 물어보면 된다.

 

쉽고, 저렴하게 가려면 부산에서 후쿠오카나 나가사키로 간 뒤, 버스나 JR을 이용하여 운젠으로 가면 된다. 나가사키에서 운젠까지는 노선버스로 1시간45분(1천900엔), 후쿠오카에서 운젠까지는 노선버스로 3시간30분(2천900엔) 소요된다. JR 패스나 KRP 소지자는 나가사키나 후쿠오카에서 기차를 타고 이사하야까지 간 후, 역 앞 버스터미널 1층의 3번 승차장에서 운젠행 버스를 타면 경비와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나가사키-이사하야 JR특급(25분), 보통(30분) 각 450엔이고 이사하야에서 운젠까지는 노선버스로 1시간20분(1300엔) 걸린다.

 

도움 : 시마바라성기독교자료관 마츠오 다쿠지, 미야자키현 원로시인 미나미 구니가츠, 대구관덕정순교자현양사업후원회 신옥균회장

 

[매일신문, 2006년 5월 20일, 글·사진 운젠에서 최미화 편집위원]


0 2,519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