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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강원감영: 붉은 꽃이 피어나는 하느님의 정원

192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9-14

[순교자 성월 특집 II] 강원감영 – 붉은 꽃이 피어나는 하느님의 정원

 

 

우리 교구에는 배론이나 풍수원 외에도 오래전 박해를 피해 살던 교우촌, 순교자들이 살던 사적지가 여러 곳 있습니다. 이번 순교자 성월에는 원주교구에 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신앙 유적지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부론 서지마을 2. 강원감영 3. 백운 화당리(꽃댕이) 4. 학산 묘재

 

 

“원주를 다 준다 해도 하느님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배교를 회유하는 관장(官長)에게 최해성(요한)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에게는 다시 태형(笞刑) 100대가 쏟아졌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불려나가자 이번에는 감사(監司)가 다른 천주교 신자를 밀고하라고 고문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살은 헝겊처럼 헤지고 뼈는 뒤틀렸다. 21번의 심문을 받고, 18번의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그의 온몸은 갈가리 찢긴 시체와 같았다. “그의 두 다리의 뼈는 부러져 2~3인치가량의 뼈 두 조각이 땅에 떨어졌다. 등은 반쯤 벌어져 창자가 밖으로 드러났고 그의 몸에는 더 이상 매질할 곳이 없었다.”(「조선순교자 역사 비망기」, 다블뤼 주교) 그 모진 고문에 쓰러진 최해성 요한에게서 흘러나온 피로 선화당(宣化堂) 앞 마당에는 붉은 꽃이 피어났다. 1839년 봄과 여름, 강원감영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앞 글자를 빌려와 강원도(江原道)라는 도명이 탄생한 것은 1395년이다. 당시 도읍의 규모는 강릉이 더 컸지만 감영(監營)이 설치된 곳은 원주였다. 원주가 강릉보다 한양과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치된 강원감영에는 관찰사가 머물며 도에 속한 군현을 돌아보고(巡歷) 수령들을 감독하며, 도내의 행정, 군사, 사법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통치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관찰사의 역할은 ‘임금의 덕을 선양(宣) 하고 백성을 교화(化)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찰사의 집무 공간을 선화당(宣化堂)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대를 읽지 못하는 위정자들에 의해 백성의 교화는 때로는 세도정치에 휘둘리고 때로는 당파에 휩쓸려 덕의 선양과 교화 대신 엉뚱하게도 무고한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와 고문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815년 울진에서 체포된 김강이(시몬) 복자는 처음에는 울진에서 가까운 안동 진영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강원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당시에는 울진이 강원도였기 때문이다. 김강이(시몬) 복자가 강원감영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에는 인근 지역에서 체포된 6~7명의 신자들이 옥에 갇혀 있었다. 아마도 이들이 강원감영에 갇힌 최초의 신자들로 보인다. 김강이는 모진 고문에 의한 상처의 후유증과 이질(痢疾)로 옥에 갇힌지 8개월 만에 옥사하였다. 그리고 김강이의 뒤를 이어 최해성(요한), 최 비르지타도 강원감영의 옥에 갇혀 있다가 교살(絞殺, 목졸라 죽임)로, 혹은 참수(斬首, 목을 베어 죽임)로 순교하였다. 그들만이 아니다. 횡성군 우천면 정금리 대숲에 살던 박요셉은 1867년 10월 원주 포졸에게 체포되어 강원감영의 마당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7, 8차례의 고문을 당하였다. 그는 평상시에 순교하기를 다짐하고 있었기에 배교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매를 때렸고(刑杖) 몸에서 흐른 붉은 피가 버선을 적시고, 땅은 피로 물들었다고 전한다. 박요셉은 감영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 중에 이런 편지를 가족들에게 남겼다. “천주께 기도하여 순교하게 해달라고, 엄형(嚴刑)을 많이 받았더니 나의 보속이 더욱 즐겁고, 순교가 정해진 일이 20여 일 남았으니 매우 즐겁다.”

 

박요셉과 마찬가지로 신앙 때문에 강원감영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혹은 강원감영을 거쳐 서울로 이송된 이들은 「포도청 등록(捕盜廳謄錄)」이나 「치명일기」 등의 기록에 이름이 나타난 이들만도 3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름이 남지 않은 숱하게 많은 강원도, 원주와 횡성 서지마을 등에 살던 이들이 감영으로 잡혀와 문초를 당하고, 그 마당에 붉은 꽃을 심었다.

 

프랑스의 화가 샤갈(Marc Chagall)은 ‘하느님은 붉은색이다. 그 붉은색은 사랑을 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감영에서 순교한 이들은 아마도 샤갈보다 더 붉은 하느님, 더 붉은 사랑을 만났을 것이다. 모진 고문 가운데서도 양심에 따라 배교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하느님을 증언하던 그들에게, 상처 난 몸에서 흐르는 붉은 피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여 붉은 꽃이 되었다. 그리고 강원감영의 마당은 그렇게 붉은 꽃이 피어나는 하느님의 정원이 되었다.

 

[2020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원주주보 들빛 5면, 문화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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