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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33: 롬바르디아 로마네스크의 정수 - 성 암브로시오 바실리카

74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8-09

[성당 이야기] (33) 롬바르디아 로마네스크의 정수


성 암브로시오 바실리카

 

 

초기의 로마네스크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원시-로마네스크라고 할 수 있는 ‘롬바르디아 건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롬바르디아의 석공 장인들은 로마 시대의 석조술을 남부 유럽에 전수하여 초기 로마네스크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롬바르디아에 로마네스크가 역수입된 것인데, 그 대표적인 곳이 ‘성 암브로시오 바실리카’입니다. 롬바르디아의 중심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된 이 성당은 로마 제국의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묻힌 곳으로, 성 암브로시오 주교가 ‘순교자들의 바실리카’로 봉헌하였습니다(379년~386년). 당시 밀라노 지역에는 아리우스 이단이 성행하였는데, 그들은 성자를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s)로 간주하지 않았고, 교회의 첫 번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단죄되었습니다. 이에 성 암브로시오는 자신의 교구에 보편공의회를 통해서 선언된 올바른 교리를 전파하고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성당 건축을 장려하였습니다. 사도들의 바실리카(지금의 성 나자로)와 동정녀들의 바실리카(지금의 성 심플리치아노) 역시 성 암브로시오의 작품입니다.

 

이후 성 암브로시오 바실리카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게 되었고, 신앙 생활에서도 단연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성당에는 참사회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밀라노 교구에 베네딕도회가 진출하면서(789년) 같은 성당의 영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수도 규칙을 사용하는 두 개의 공동체가 같은 성당을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회원들은 북쪽 건물을, 수도자들은 남쪽의 두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두 개의 종탑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9세기 수도자들의 종탑이 먼저 세워져 수도회의 미사를 알리는 종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당은 8~9세기에 한 차례 증축한 후, 1080년에 지금의 로마네스크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128년에 네이브를, 1140년에 리브 볼트 천장을 완성하였습니다. 평면은 초기 그리스도교 양식으로 지어진 3랑식 바실리카 그대로이고 트란셉트는 없습니다. 중앙 앱스 양쪽의 두 개의 작은 앱스는 나중에 추가된 것입니다. 리브 그로인 볼트 천장은 각각의 대응 기둥과 연결되며, 아일의 폭은 네이브의 절반에 해당하고, 네이브월은 상부에 갤러리층과 클리어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동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트리움은 12세기에 지어졌는데, 그때 참사회원들이 사용하는 두 번째 종탑도 세워졌습니다.

 

성당 외부의 파사드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기보다는 뾰족한 오두막집을 연상시킵니다. 하단에는 같은 크기의 아케이드가 3개 있고, 상단에는 가운데가 크고 양 옆이 작은 아케이드가 있는데, 이 발코니에서 주교가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었다고 합니다. 포르티코(주랑현관)의 아케이드는 기둥들로 지지되어 있으며 겹으로 된 아키볼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포르티코 벽면 상부는 성당 파사드와 같은 형태의 롬바르디아 밴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바실리카는 여러 차례 증축되면서 다양한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있습니다.

 

[2020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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