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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0년 7월 5일 (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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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선교사 깔레 신부님

68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4-02

[레지오 영성] 선교사 깔레* 신부님

 

 

문경에 있는 마원 · 진안 성지 담당으로 발령 받고 나서 막막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성지의 간단한 역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지와 관련된 책을 살펴보다가 ‘조선 선교에 바친 삶’**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파리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깔레 신부님에 대한 전기이다. 깔레 신부님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었다. 신학생 때 깔레 신부님과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 이야기로 연극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사제와 평신도의 우정을 담은 것이었다. 박해를 피해 이집 저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신앙 교우촌으로 피신하면서 깔레 신부님과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가 겪은 사연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박상근 마티아와 깔레 신부님의 우정을 다루었기에 깔레 신부님의 사연을 자세하게는 몰랐다. 그리고 깔레 신부님은 순교를 하시지도 않고 본국으로 되돌아가신 선교사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내게 ‘조선 선교에 바친 삶’ 책을 통해 깔레 신부님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먼저 어떻게 이분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을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책장의 넘기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한 수녀원에서 1957년경에 발간되었다. 깔레 신부님은 봉쇄 수도원이었던 이 수도원의 지도 신부님이셨다. 이런 신부님을 그분이 돌아가신지 70년이 지난 뒤에 그분을 기억하여 깔레 신부님의 삶의 행적 기록한 것이다. 비록 깔레 신부님은 조선이라는 선교지에서 프랑스로 되돌아오신 분이었지만 그분의 삶은 조선 교회를 떠나오신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프랑스로 되돌아가신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박해를 피해 피난 다니면서 모진 고생을 한 탓에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51세에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깔레 신부님이 봉쇄 수도원에 가신 이유는 자신이 조선에서 몸으로 선교를 하지 못하니 평생 기도로써 조선 교회를 위해서 사시겠다는 마음으로 봉쇄 수도원으로 가셨던 것이다.

 

 

레지오 단원으로서 외적 활동 부족하다면 그 시간을 기도로 봉사

 

깔레 신부님은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때에 12명의 선교사중 살아남은 세분의 선교사 중에 한 분이시다. 1860년 7월 파리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다른 한 명과 함께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9개월의 긴 여정을 통해서 겨우 조선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으로 간다는 것은 순교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길이었다. 부모와 형제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먼 이국땅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순교를 늘 갈망하며 그리고 조선 땅에서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신자들을 그리워하며 가족들로부터 떠났다. 오로지 조선 교회만을 위해서 말이다.

 

조선 땅에 들어왔지만 사목이라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외모 때문에 사람들 눈에 되도록 안 띄게 다녀야했다. 그리고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쉽게 대답해서도 안 되었다. 한두 마디만 하여도 어투가 외국인이라는 것이 표시 나기에 항상 외진 길이나 해가 뜨기 전 새벽 일찍 아니면 한 밤중에 다녀야했다. 그리고 교우 집에 가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알면 안 되기에 방문을 잠그고 있어야 했고 방에 불도 땔 수도 없었다. 빈방에 연기가 나도 동네 사람들이 의심을 살 수 있어서 추운 방에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낮에는 토굴에 숨어 있다가 밤에 되어 집에 내려오기도 하였고 아니면 호랑이나 귀신이 나온다는 골짜기로 며칠씩 가서 지내 있어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주간임에도 불구하고 미사도 드리지 못하고 그냥 숨어만 있어야 하기도 했다.

 

깔레 신부님의 사연을 읽고 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분은 동료 선교사들과 교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거기에 함께 있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워한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이 사목하던 교회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봉쇄 수도원에서 기도로써 대신 하고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레지오는 신심 단체이기도 하며 봉사 단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도하며 봉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외적 활동에 치중하다보면 기도에 대해 소홀해 질 수도 있다. 깔레 신부님을 보면 그분이 비록 선교사로서의 활동을 다하지 못해도 그것을 기도로 대신 봉헌하겠다는 마음이 그분을 더욱 값지게 한다. 레지오 단원으로서 외적 활동이 부족하다면 그 시간을 기도로 대신 봉사하겠다는 마음과 자세를 깔레 신부님을 통해서 다짐해보았으면 한다.

 

* 본명 Nicloas Adolphe Calais(1833-1884) 파리외방전교회 일원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다가 모벡(Maubec)에 있는 착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지도신부로 생을 마감한다.

 

** 원저는 ‘조선 선교에서 씨토회 수도원까지’이며 안동교구 설립 50주년 기념으로 1990년 프랑스 르망교구에 파견된 이영길 가롤로 신부가 2019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4월호, 정도영 베드로 신부(안동교구 마원 · 진안리성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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