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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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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33: 죄 많은 곳에 은총이(385~387항)

228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8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33. 죄 많은 곳에 은총이(「가톨릭 교회 교리서」 385~387항)


‘은총과 죄’는 ‘빛과 어두움’의 관계와 같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사육」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일본이 한창 교전할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일본 소년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 마을의 공동 창고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에 커다란 비행기가 떨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곧 수색에 나섰고, 저녁 무렵 비행복을 입은 한 흑인 병사를 끌고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 덫으로 쓰이는 쇠사슬로 흑인 병사의 양쪽 발목을 묶고 지하 창고에 가두고는 짐승처럼 사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멧돼지 덫에 묶여진 흑인 병사의 살갗이 벗겨져 염증이 생긴 것을 보고는 덫을 풀어 주었습니다. 소년의 도움으로 흑인 병사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청에서 흑인 병사를 끌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흑인 병사는 지레 겁을 먹고 소년을 인질로 잡아서 난동을 벌입니다. 결국 흑인 병사는 소년의 아버지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게 됩니다.

 

‘죄’나 ‘악’에 대해 말할 때,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았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악(惡)은 선(善)의 부재(不在)’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둠은 본래 있었는데 빛이 나타나자 어둠이 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죄의 본질은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과 함께 고려되어져야 합니다.(385항 참조) 빛이 없으면 어둠이 의미가 없듯, 은총에 대한 개념 없이 죄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387항 참조)

 

위의 이야기에서 만약 흑인 병사가 아이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 아이를 인질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죄가 조금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자유를 준 아이의 사랑 때문에 병사의 죄는 더욱 커진 것입니다. 은총이 크면 죄도 커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혀 모를 때는 무슨 일을 해도 죄가 안 됩니다. 쥐가 곡식을 훔쳐 먹었다고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쥐에게 좋은 일을 해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사랑을 멈추신 적이 없으십니다. 

 

모든 인류가 죄의 족쇄에 채워져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빛이 세상에 왔지만 어둠은 빛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1 참조) 이렇게 가장 완전한 은총이 주어졌을 때 세상의 죄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마르 12,1-12; 루카 20,9-19)에서 주인은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먼 곳으로 떠나서 삽니다. 추수철이 되자 하인들을 보내어 도지를 받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합당한 몫은 보내지 않고 하인들을 때리거나 죽입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마지막으로 외아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상속자를 살려둘 수가 없어 주인의 외아들도 죽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큰 죄이지만, 은인의 아드님을 죽이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이는 하느님 최고 은총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어떠한 운명을 맞을지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은총을 받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이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싫다고 부모가 없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자라지 않고 정글에서 짐승처럼 자란다면 그 아이는 평생 부모에게 효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인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은총 때문에 죄가 발생하지만, 그 은총 덕분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많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만큼 은총을 충만히 내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죄에 떨어진다고 해서 크게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은혜를 더 깊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빛을 받아들이고도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짜 죄입니다. 빛은 항상 어둠과의 싸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기는 법은 은총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지은 죄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은총이 주어짐에도 죄와 싸우고 있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18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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